출판
‘형식 파괴’, 민음사 역사서, 이념 논란 잠재울까
라이프| 2014-01-08 09:06
역사를 둘러싼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논란의 중심에는 역사 교과서가 있다. 전국 각 급 학교에서 벌어진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역사 왜곡 문제를 넘어 이념 갈등으로 치달았다.

박정희정권 및 5.16 쿠데타 미화, 친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전국 2300여개 고교 중 청송여고 한 곳만이 채택하자, ’박근혜 정부와 이 학교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음모론'까지 불거지는 것도 어찌 보면 역사를 둘러싼 이념갈등의 연장선이다.

이 같은 논란은 역사가 단순한 지식이나 학문 이상의 것, 즉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주요 가치를 합의하는 토대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사 교양서적은 한 두 권 분량의 개론서가 대부분인 상황이다.

국내 최대 인문학 출판사인 민음사가 3년간의 준비 끝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한국사 통사 ‘민음 한국사’를 총 16권에 걸쳐 선보인다. 총 예산 3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그 시작으로 민음사는 조선의 건국을 다룬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과 조선 초 역사를 다룬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2권을 내놓았다.

기존의 역사서, 역사교과서와는 달리 서술형식의 파괴가 눈에 띈다. 동시간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술했다는 점에서 담백하고, 이념 갈등의 여지를 줄였다.

민음사가 지난 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민음 한국사’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저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왼쪽부터 박진호 서울대 교수, 정재훈 경북대 교수, 장은수 민음사 대표, 문중양 서울대 교수, 한명기 명지대 교수, 강응천 문사철 대표, 한필원 한남대 교수, 염정섭 한림대 교수. [민음사 제공]

민음사는 지난 7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음 한국사’의 출간 취지를 밝혔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한 사회의 교양은 문학ㆍ철학뿐만 아니라 역사가 있어야 완성된다”며 “근래에 한국사 연구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고 역사를 다룬 소설 등의 대중화로 인해 역사를 교양 차원에서 다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민음 한국사’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왕조로 구분하던 기존의 역사 서술의 방식을 버리고 세기(世紀) 단위로 쪼개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이다. 또한 역사학자 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에 대거 참여해 입체적인 서술을 시도한 것도 특징이다. 경북 봉화군의 ‘닭실마을’을 소개하며 조선 중기 사대부들의 이상향을 설명한 한필원 한남대 건축학과 교수와 한글 창제에 대한 의미를 서술한 박진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참여는 그 대표적인 예다. 임진왜란으로 퍼져 나간 ‘도자기 루트’, ‘닭실마을’과 중국 사대부 마을 ‘신엽촌’을 비교한 도표 등 화려한 인포그래픽도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음과 동시에 이해를 돕는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100년 단위로 역사를 쪼개서 바라보자 우리와 동시대에 존재한 다른 문명들을 같은 시공간에 놓고 서술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며 “이를 통해 일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사와 세계사의 상호 교류와 영향을 드러내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음사가 출간 및 유통을 맡고,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등을 기획한 문사철이 필진 선정과 편저를 담당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첨예한 논란을 의식한 듯 민음사는 서술의 객관성과 균형성을 강조했다. 강응천 문사철 대표는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도록 기획 단계부터 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서술 방향과 수위를 맞춰나갔다”며 “특히 이념대립 등 논란이 많은 20세기 현대사의 경우 대립의 근거까지 철저히 연구해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보자는 관점으로 서술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민음사는 3개월에 1권 꼴로 책을 발간해 올해 안에 조선 편 5권을 끝내고 2016년 말까지 16권을 완간할 계획이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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