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디지털을 입은 수묵산수
라이프| 2014-01-14 11:09
멀리서 보면 수묵산수다. 어깨가 벌어진 거대한 암벽과 유려히 흐르는 기암괴석, 고고한 소나무까지… 백여년 전 어느 선비가 그린 것인가 싶었는데, 가까이 보니 뭔가 이상하다. 먹이 아닌 크리스탈과 아크릴물감으로, 한지가 아닌 캔버스 위에 그렸다. 게다가 선도 디지털 사진의 픽셀처럼 끊겨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 수묵산수화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해온 황인기(63) 작가의 그림이다. 

황인기‘오래 된 바람 09 183’, 크리스탈, 캔버스에 아크릴, 180×180㎝, 2009.
[사진제공=일우 스페이스]

작가는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산수화나 자신이 찍은 풍경사진 혹은 세잔의 정물화 등 이미지를 컴퓨터를 통해 픽셀로 환원시킨 후, 이것을 붓이 아닌 크리스탈, 플라스틱 블록, 실리콘 등을 활용해 표현하는 독특한 작업을 해왔다. 낯익은 이미지를 낯선 재료로 표현하니,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가 확실하게 분리된다. 기의엔 적합한 기표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새로운 시선에 의해 재구현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황인기 작가의 산수는 서소문 ‘일우 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2월 26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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