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사진을 통해 시를 쓰죠” 사진작가 이정진 개인전
라이프| 2014-01-15 18:04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커다란 한지에 툭 하고 놓인 물체는 흡사 추상화 같다. 그림자도 없고, 섬세한 디테일이 생략된 피사체는 오히려 물성 자체의 본성이 잘 드러난다. 고요하다. 흰 여백과 사물의 관계가 편안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그런데, 회화작품이 아니라 사진이란다.

한지에 사진 인화라는 독특한 작업을 하는 세계적 사진작가 이정진의 개인전이 열린다. 신세계갤러리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12층에서 사진전 ‘THING’을 개최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THING’ 시리즈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제작된 작품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물체들(가위, 의자, 강화 약쑥단, 작은 토기 등)을 크게 확대한 흑백 사진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작가를 만나 훌륭한 피사체로 변했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작가는 개인전을 위해 방한, 15일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작가는 “사물에 자체에 내재된 에너지보다 나와 만났을 때 반응하는 에너지에 집중하려고 했다. 관객들도 사진을 보고 비슷한 에너지를 느낀다면 잘 전달 된 것이고 아니라면…그저 독백일 뿐이다”는 말로 ‘THING’시리즈를 설명했다. 

이정진 `THING 04-29`, 한지에 유제, 한지 배접, 74X100cm, 2004 [사진제공=신세계갤러리]

이 작가의 작업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기본적으로는 아날로그 흑백필름을 한지에 인화하는 방식이다. 다만 한지를 인화지처럼 용액에 담그는 것이 아니라, 붓으로 유제를 고르게 발라서 그 위에 인화작업을 한다. 인화지와 달리 한지의 성질이 핸들링이 까다로와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한 장을 겨우 인화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리기도 여러번 했단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고집했던 이유는 일반 인화지보다 훨씬 회화적 질감과 틀을 얻기 쉽고, 형태나 크기에서도 자유로우며 본인의 느낌을 전달하는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정진 `THING 04-20`, 한지에 사진 유제, 한지 배접, 74x100cm, 2004. [사진제공=신세계갤러리]

작품을 직접 보면 사진이라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회화적이다. 흰 한지 위에 그림자도 없이 부유하는 익숙한 사물들은 원래 우리가 알던 그것이 아닌것 같다. 의도적 여백이 작품 앞에서 한없이 명상하게 만든다. ‘THING’연작에 이은 ‘WIND(바람)’연작 그리고 최근 작업하고 있는 ‘BREATH(숨)’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사진이란 수단을 통해 시를 쓰고 있다”는 작가의 말 처럼 한지 위에 정갈하게 써 내려간 시 한편을 읽은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백화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이정진작가의 사진전은 2월 16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이정진 `THING 04-13`, 한지에 사진 유제, 한지 배접, 140x195cm, 2004. [사진제공=신세계갤러리]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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