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흑자(黑磁)’ 명인 김시영…이대,서울대 딸들에게 “멍청해져라” 하는 까닭?
라이프| 2014-02-08 12:58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칠흙처럼 검푸른 흑유 도자기를 만드는 가평요의 ‘흑자(黑磁)’명인 김시영 장인(56). 그는 이대(첫째), 서울대(둘째) 출신의 두 딸에게 수시로 “멍청해져라”고 한다. 명문대를 나왔거나, 졸업반인 딸들에게 왜 그런 엉뚱한 주문을 하는 걸까?

청곡 김시영 씨는 “흙을 만지는 도자기가 좋아, 다니던 대기업(현대중공업 등)을 그만두고 지난 25년간 흑유 도자기(흑자)를 빚어왔다. 남들은 좋은 직장 때려치고, 생계도 까마득한 길로 나선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참으로 막막하고, 외롭고, 힘든 길이었다. 그런데 그 척박한 길을 걷는 내 모습을 본 두 딸마저 전공(서양화, 조각)이 아닌, 도자기의 길을 택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인내하며 파고들어야 하는 작업이라 수시로 ‘멍청해져라’고 말한다. 약아서는, 급하게 무언가를 이루려해서는 결코 끝까지 가지 못하니까 말이다. 흑자는 그렇게 힘든 길이다”고 했다.

흑유명가 가평요의 김시영 작가와 딸 김경인 왼쪽, 김자인. [사진 취재=윤병찬 기자]

김 씨가 두 딸(김자인, 김경인)과 함께 ‘흑유명가, 가평요–검은 달항아리와 그 이후’전을 연다. 지난 5일 서울 소공동의 롯데갤러리(롯데백화점 본점 12층, 14층)에서 개막돼 오는 1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고혹적인 검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다양한 흑자들이 나왔다. 흑자달항아리, 차도구, 다완, 생활자기 등 흑자 40점과, 두 딸의 작품(김자인의 도자기구두, 김경인의 사과작품)까지 약 70점을 감상할 수 있다.

청곡 김시영은 가평군 청평에서 고려 이후 거의 맥이 끊기다시피한 흑자를 빚는 ‘흑자도예가’다. 흑자는 다채로운 유약과 불의 요변(窯變)에 따라 깊은 검은색을 드러내는 도자기를 가리킨다. 흑자는 유약도 중요하고, 불의 세기와 조절도 동시에 중요하다. 흑자 장인을 일컬어 ‘불의 연금술사’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땅의 흑자는 고려시대에 번성해 조선말까지 이어져오며 오자기, 석간주 등으로 불렸다. 고려에선 한동안 흑자가 왕실과 세도가들 사이에 각광받았으나, 조선에 들어서는 백자 가마터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며 그 명맥만 간신히 유지됐다. 근대 현대도자가 유입되면서는 아쉽게도 거의 쇠퇴했다. 

김시영 작가가 대표작인 흑유 ‘공작’ 항아리와 함께 했다. [사진 취재=윤병찬 기자]

물론 기원전 4-5세기 제기로 쓰이는, ‘흑도’로 불리는 검은 도기가 이 땅에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청자 가마에서 흑자를 더러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 흑자는 청자나 백자 가마에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공통점이다. 반면에 중국과 일본에선 흑자를 도자기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자기로 평가한다. 특히 일본에선 흑자의 가치를 매우 높게 본다.

아울러 흑자는 단순한 흑색, 적갈색 도자기에 그치지않고, 검은 색 속에 ‘요변’이라 하여 무늬와 색상을 다채롭고 오묘하게 표현하며 그 깊이를 더하는 것이 매력이다. 특히나 송나라의 요변천목은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청자, 백자, 분청과는 달리, 흙과 불로 도자 표면색상과 무늬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게 표현되기에 더욱 신비롭고 환상적인 것이다. 게다가 그 희소성, 우연성 때문에 누구나 범접할 수 없는 도자의 영역이 바로 흑자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흑자가 흑색, 또는 적갈색을 띄고 있어 ‘음색’이라며 오랫동안 터부시해왔다. 백자를 선호하던 조선시대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그로 인해 일상에선 쓰기 힘들었고, 수요가 없다 보니 제작과 실험 또한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흑자만을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가평요를 이끄는 청곡 김시영이 유일하다. 청자나 백자, 분청을 작업하며 흑자를 일부 시도하는 작가들은 있지만, 흑자만 고집하는 작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흑자는 일반 도자기보다 높은, 섭씨 1300도이상의 고온소성을 해야 한다. 예민하고 미세한 불의 변화로 도자의 표면이 안개같이 캄캄한 빛이었다가, 어느 순간 영롱하면서도 오색찬란한 빛과 무늬로 바뀌는 것이 흑자의 매력이다. 

흑유명인 김시영의 달항아리 작품들. [사진제공=롯데갤러리]

공작새가 활짝 깃털을 펼쳤을 때의 그 숨막힐듯 아름다운 자태, 우주 속에서 별무리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검은 하늘을 뒤덮는 듯한 형상 등은 오로지 흑자를 통해서만 표현이 가능하다. 청곡의 세로로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달항아리, 꽃무리가 현란하게 핀 다완 등이 좋은 예다. 특히 청곡의 ‘공작’ 달항아리는 자연과 불, 그리고 작가의 땀방울이 거의 완벽하게 결합된 압도적인 작품이다. 섬세하면서도 신비로운 표면의 무늬와 빛깔은 감상자의 발길을 붙든다. 그러나 이같은 명품 흑자들은 수백번의 작업 끝에 한점 탄생할까 말까 하다. 흑자의 길이 힘들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시영은 서예가였던 부친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먹의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검은 먹의 세계가 그의 일상 속에 스며든 것이다. 이후 1974년 용산공고 금속과에 들어가 용광로의 화염을 접하게 됐고, 연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물질을 만들려 했다. 대학시절 서클활동으로 산악부에 들어간 김시영은 산을 타다가 흑자와 결정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태백산맥 29박30일 종주 중, 화전민터에서 검은 도자파편을 맞닥뜨린 것이다. 그 깊고 오묘한 검은 색은 그의 가슴과 뇌리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흑자에 대한 열망은 결국 사표를 던지게 했고, 도자기시험연구소에서 흙과 불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이후 이천의 세라믹회사의 공장장이 돼 흙과 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으로, 노(老)도공을 찾아다니며 전통도자의 흙과 불에 대한 연구도 시도했다.

청곡은 “중국과 일본의 흑자자료를 탐구하고, 그들의 재료를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의뢰해 분석하기도 했다. 과학도 출신이었으니 과학적으로 흑자를 풀려한 것이다. 그러나 흑자의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검은 빛깔을 내는 철분은 카멜레온같기에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고 했다. 결국 1989년, 김시영은 고향이자, 조선중기 양질의 흑자 산지인 가평에 작은 가마를 짓고, 흑자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그는 말한다. “아무도 가지않고, 누구도 알지못하는 길을 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 길이었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였다. 대학시절, 유럽 알프스의 한 산자락을 등정하던 중 조난당해 거의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그 고립된,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나온 악바리 근성이 없었다면 아마도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또 불과 흙에 대한 무수한 실험과 연구, 과학적인 훈련 등도 흑자의 재현의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흑자명인 김시영의 ‘요변천목 다완’ [사진제공=롯데갤러리]

미답봉을 오르듯 청곡은 호기심과 경외의 마음으로 온갖 유약을 바꿔가며, 가마의 로드를 수정해가며 십년 만에 드디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흑색과 적갈색이 나는 흑자를 재현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에서 발전한 ‘천목’도 마침내 구현하게 됐다. 더 나아가 그만의 독특한 색상을 창작해 신묘한 빛깔과 무늬를, 흙과 불로 만들어내고 있다.

흔히들 검은 도자기 일체를 흑자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흑자는 검은색이 포용한 다채로운 색상이 요변(窯變)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 깊은 색상을 불러내는 ‘불의 마법’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청곡이 빚어낸 흑자는 모든 것을 빨아들여, 검고 깊은 블랙홀 속에서 삼라만상의 색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 차이점이다.

평론가들로부터 청곡의 요변 흑자는 ‘검은 대지에 잔잔히 피어난 오묘하고 아득한 꽃들 같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명장제도의 전신이 된, 한 분야의 최고장인에게 주어지는 ‘경기으뜸이’에 1999년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흑자는 일본에서 먼저 평가받은바 있다. 지난 90년대 일본의 경매회사들이 참고하는 ‘일본구락부명감’에선 그의 작은 찻잔 하나가 100만엔(약 1000만원)에 책정되기도 했다. 일본 도자기 애호가들은 앞다퉈 그의 흑자다완 등을 수집한바 있다.

하지만 김시영 흑자의 길은 여전히 험하다. 힘겹고 고된 작업이어서 배우겠다는 젊은이들도 없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이 또한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흑자의 일인자로 꼽히지만 대중에겐 흑자도, 청곡 김시영 장인도 무척 생소하다. 고진 땀방울로 일군 작품 보다는, 대중에게 친숙한 유명작가 작품이 더 각광받는 시대이니 말이다.

다행히 두 딸이 아버지의 길을 잇겠다고 나서 청곡은 힘을 내고 있다. 각종 과학적인 데이터와 유약및 흙, 불의 노하우를 전수 중이다. 큰 딸인 김자인 씨는 ”아버지가 우리를 어렸을 때부터 무척 혹독하게 기르셨다. 도자기용 흙을 찾기 위해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산을 자주 탔는데 엄청나게 무거운 흙을 매고 하산하느라 탈진한 적도 여러 번이다. 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강훈련이 오늘 우리를 만든 것같다”고 했다.

청곡은 흑자를 쓰임이 있는 공예품과 찬란한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은 물론, 도자회화및 도자조각으로 작업영역을 확대 중이다. 조소를 전공한 두딸 김자인(28, 이화여대 조소과 졸), 김경인(24, 서울대 조소과 4년) 또한 아버지의 이를 이으며 다채로운 흑자 도자작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흑유명가 가평요전-검은달항아리와 그 이후”에는 고려시대 이후 맥이 끊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나라 흑자를 재현한 김시영의 초기작부터, 오랜 연구로 탄생한 작가 고유 유색의 김시영 흑자, 그리고 흑자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2세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청곡은 “흑자는 백자, 청자와는 또다른 미감을 선사한다. 보면 볼수록 그 깊고 검은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멋장이들은 원색을 입다가 결국엔 검은색으로 귀결되지 않던가. 도자기 분야에서도 흑자의 신비롭고 멋진 세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됐으면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흑자가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갔으면 한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02-726-443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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