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대통령의 연설문으로부터 배우는 글쓰기의 비결
라이프| 2014-02-21 09:13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지난 2005년 10월 21일, 제60회 ‘경찰의 날’ 축하행사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경찰에 대한 당부를 담은 긴 연설을 준비했다. 그런데 행사장에 폭우가 갑자기 쏟아졌다. 노 대통령은 원고를 덮었다.

“제가 7분짜리 치사를 준비했습니다. 줄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의 자랑입니다.”

대통령은 연설문을 통해 자신의 뜻을 국민에게 전하고 국가를 통치한다. 즉 연설문은 국민과 국가를 설득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글이다. 대통령은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르는 청중을 상대로 연설을 해야 한다. 발표 장소와 전달 매체를 고려해 단시간에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 연설문의 필수적인 요소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늘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다소 과격하지만 인사 청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단 한마디로 파악할 수 있는 표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 “햇볕정책” 등 머릿속으로 곧바로 그려지는 비유를 활용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는 대통령의 말과 글을 소재로 다룬 최초의 책이다. 청와대에서 8년 간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보고 듣고 배우며 체득한 글쓰기 방법을 40가지로 정리해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설명과 예문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글쓰기 책들과는 달리 흥미진진한 경험담을 통해 글쓰기 방법을 전달한다. 저자는 취임사를 비롯하여 대일외교의 뜻을 담는 ‘3ㆍ1절 기념사’, 남북관계의 방향을 담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연설’ 등 연설문을 예로 들어 글을 쓸 때는 무엇을 파악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설명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핵심 메시지를 쓰는 법, 글의 기조를 잡는 법, 서술, 표현법과 퇴고의 방법 등 각 꼭지마다 두 대통령이 주로 사용했던 글의 기법들을 밝힘으로써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방법을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대통령의 무수한 문장들과 위기의 순간에 발표된 연설문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은 내용에 생생함을 더한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8. 상징적으로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 31.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20~21쪽 ‘관저 식탁에서의 2시간 강의-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

저자는 글을 쓰는 쪽이 철저히 ‘을’이라는 인식을 갖추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두 대통령은 연설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만큼은 국민 앞에 자신이 ‘을’이란 마음으로 연단 위에 섰다”며 “같은 주제로 여러 버전의 글을 쓰고 그중에서 국민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 방법, 국민이 가장 쉽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단어로 만들어진 연설문을 골라 국민 앞에 섰다”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글은 그 글을 봐 주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며 “지금 자신이 말하려는 메시지가 상대방이 관심 가질 만한 내용인지 나의 표현 방법이 상대방이 이해하기에 편한지 끊임없이 의식할 때, 글로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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