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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책 없는 도서관’ LG상남도서관
뉴스종합| 2014-03-07 07:44
[헤럴드경제=김윤희 기자]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LG상남도서관. 동쪽으로 창덕궁이 시원하게 펼쳐진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에는 책도, 사서도 없다. 10명의 직원들은 DB제작실, 정보검색실, 시청각세미나실에서 전자책과 학술논문 등을 웹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 개발 및 유지 작업에 분주하다. 지하 1층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서버가 낮은 굉음을 내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곳은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맞춰 1996년 개관한 과학기술 전문 도서관이다. 책을 열람하기 위해 이 ‘책 없는 도서관’을 방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건축가 고(故) 김수근씨가 설계한 구자경 LG명예회장의 집을 방문하려는 건축학도, 도서관 시스템을 견학하려는 정보문헌학 관련 인사들이 종종 발걸음을 한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그러나 웹과 모바일에 얼굴을 내민 LG상남도서관은 늘 방문자들로 북적인다. 월평균 40만명 이상이 홈페이지를 방문해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다. 이중 30만명 가량은 ‘LG사이언스랜드’를 찾는 어린이와 청소년, 학부모들이다. 지난 2003년부터 운영해온 ‘LG사이언스랜드’는 과학 실험 동영상과 게임, 퀴즈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교과과정에 맞춰 제작해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어려운 과학을 노래로 풀어낸 ‘과학송’은 월평균 30만회 이상 다운로드되는 인기 콘텐츠다. ‘과학송’과 ‘창의통통 체험활동’은 모바일 앱으로도 출시됐다. 


정윤석<사진> LG상남도서관장은 “과학기술 서적과 학술논문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디지털 과학도서관’으로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LG상남도서관은 과학기술분야 교수, 연구진, 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기존 서비스 범위를 일반인에게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과학과 관련한 인문학적 지식을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연내 별도 사이트를 통해 선보인다. 


기존 과학기술 관련 콘텐츠는 모바일을 통해 더욱 강화한다. LG상남도서관이 판권을 구입한 과학분야 도서는 교보문고 모바일앱을 통해 무료로 ‘전자책’ 형태로 읽을 수 있다. 웹상에서 제공하는 정보량도 방대하게 늘어났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해외 과학기술 자료와 보유도서는 이미 300만편을 넘어섰다. 보유논문은 170만건, 소장 강의자료는 35만건 이상이다.

LG상남도서관이 국내 최초의 디지털도서관으로 출발한데는 이 건물에 대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애착이 컸다. 


구 명예회장은 자신의 사저를 1994년 LG연암문화재단에 기증하면서 “그룹의 역사가 담긴 건물인 만큼, 그 형태를 그대로 보존했으면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구 회장의 어머님을 모시던 1층 안방은 도서관장실로, 구 회장 내외가 사용하던 방은 2층 세미나실 등으로 쓰임새만 바뀌었다. 지금도 도서관장실 방문에는 어머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수복강령’ 글자가 또렷히 새겨있다. 정 관장은 “가정집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없이 도서관으로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디지털도서관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LG상남도서관은 LG를 비롯한 국내 전자 통신 분야 발전과 세계적인 ‘디지털 붐’을 타고 발전을 거듭했다. 도서관 이용자 수, 보유자료량 등은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사립도서관으로서는 획기적인 성과다.

시각장애인 전용 모바일앱인 ‘책읽어주는 도서관’은 시각장애인 전용 LTE 스마트폰 등 기술개발에 힘입어 회원 수와 음성도서 보유량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이제 설립 18년째를 맞는 LG상남도서관은 민간기업 도서관으로는 찾기 힘든 ‘100세 도서관’이 꿈이다.

정 관장은 “도서관은 LG연암재단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수익, 주식배당 수익, 그룹 기부금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재단 자체가 사회에 환원된 만큼 재단과 도서관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정 관장은 “LG상남도서관이 과학기술 분야로 특화된 만큼, 다른 민간기업들도 각 전공분야에 특화된 도서관을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대카드가 주택, 조각, 사진 등 예술분야 서적 1만권을 구비한 ‘디자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네이버도 정자동 사옥 내에 백과사전 1300권, 매거진 250종, 디자인도서 1만7000여권 등을 구비한 ‘네이버 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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