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편의 역사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회는 티모셴코 전 총리의 최측근인 투르치노크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하며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과도정부는 오는 5월 25일 개최되는 대통령 선거 전까지 국가부도 위기를 수습하고 동ㆍ서 간 분열을 통합하여 정국 안정을 도모하는 중책을 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지지를 받는 크림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이 행동화되고 있어서 이를 해결해야 하는 험난한 과제마저 안고 있다.
과도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만만치가 않다. 우크라이나 동ㆍ서 간의 갈등에 더하여 강대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석학인 브레진스키가 1997년에 쓴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책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정학적 주축지역으로 갈파했다.
블룸버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못 하는 이유 7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러시아가 구상하고 있는 유라시아연합 결성이 물거품이 된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 역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동유럽 팽창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유럽연합(EU)보다는 러시아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의 8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30%에 달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천연가스 공급 중단, 가스요금 인상, 특혜관세율 철폐, 통관 지연 등 무역제재, 러시아에서 일하는 우크라이나인의 비자 취소, 크림공화국 독립 움직임 지원 등이 러시아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유로마이단(Euro-Maidanㆍ친유럽시위, 마이단은 키예프에 있는 독립광장) 저항이 시작한 배경은 야누코비치 전임 대통령의 EU 준회원가입 협정 중단 선언이었지만 보다 깊은 원인은 악화된 경제 상황이다. 일반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반면 집권층의 부패는 심해지고 대기업은 정경유착으로 부를 늘려 가는 현실에 유로마이단은 국민적 지지를 얻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다수가 EU 가입을 원하고 있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5월 25일에 출범하는 신정부가 친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동서 분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부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많은 국가다. 세계 흑토의 40%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70억달러 이상의 곡물을 수출하는 세계 6대 곡물수출국이다. 철광석, 망간, 우라늄, 석탄, 구리 등의 매장량도 상당한 자원부국이기도 하다. 소련 시절부터 축적된 기술력과 제조업 기반도 주목해야 한다. 철강 산업, 조선업, 항공우주산업, 원자력, 정보기술(IT) 부문의 기술력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중국이 보유한 항공모함은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기술로 건조됐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농업, 항공, 에너지, IT, 금융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양국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놓치기에는 잠재력이 큰 국가다.
김광희 코트라 키예프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