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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살인과 추적, 미스터리의 기상천외한 팬시 케이크
엔터테인먼트| 2014-03-19 16:41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팬시 케이크’같은 영화다. 색과 스타일의 향연이 달콤한 향을 한껏 풍기고, 살인과 추적, 미스터리가 복잡하게 얽혀 강렬한 맛을 내는, 현란하고 값비싼 고급 수제 ‘팬시 케이크’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영화 제목으로 비유하자면, 웨스 앤더슨 감독은 스스로 지은, 무척 고풍스럽고 매우 화려하며 매우 럭셔리한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창조자이자 건축주이며 방문자를 안내하는 ‘벨보이’이자, 모든 접대를 총괄하는 지배인이고,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어 서비스하는 호텔 베이커리의 제빵사이다. 그러나 조심할 일이다. 그가 만들어 내놓는 케이크의 달콤한 향과 맛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환상적인 동화같은 그림과 이야기 속에는 달콤한 향과 맛으로 유혹하는 독과 가시처럼 유럽의 잔혹사가 숨겨져 있다. 요컨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로 느낄 수 있는 시청각적인 쾌감과 극적이며 정서적인 묘미로 가득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역사와 현실, 빛과 색으로 지었지만, 원재료를 잊을 정도로 환상적인 창조물이다. 


영화는 액자 속의 액자, 그 속의 또 다른 액자로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며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소녀가 유럽의 동쪽 끝 주브로브카 공화국(가상의 나라), ‘국보’라고 명명된 한 작가의 동상 앞에서 경의를 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소설을 지은 작가다. 그리고 카메라는 ‘현재’로부터 다시 2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중반 바로 생전 작가가 카메라를 마주하고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아주 큰 착각이 있죠. 바로 작가가 상상력이 끊임없이 작동시키면서 무궁무진하게 사건과 이야기를 발명한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그 정반대죠. 사람들은 당신이 작가라는 사실을 알면, 당신에게 자신이 보고 듣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해줍니다. 작가는 사람들을 잘 지켜보고 주의깊게 듣는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 이야기가 작가를 쫓게 마련이죠.”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다시 약 20년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찾아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1968년 작가가 젊었던 시절, 글을 쓰기 위해서 ‘주브로브카 공화국’ 내 온천관광 도시에 있던 고풍스러운 호텔을 찾는다. 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이곳에서 그는 수수께끼에 쌓인 호텔주 무스타파(F. 머레이 아브라함 분)를 만난다. 그가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무스타파는 호텔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 자신이 주인이 된 내력을 들려주게 된다. 영화는 다시 20여년 이상을 건너뛰어, 무스타파의 이야기를 그린다.

때는 1927년. 무스타파는 고국에서 가족을 잃고 전쟁과 학살을 피해 주브로브카 공화국으로 온 어린 소년으로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의 호의를 입어 ‘로비보이’로 채용된다. 소년 무스타파(토니 레볼로리 분)는 가족과 학력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제로’로 불린다. 그에게 호의를 베푼 구스타프는 수개국어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 아니라 탁월한 화술과 접대로 귀족과 상류층, 권력층을 호텔로 끌어들인 탁월한 지배인이었다. 물론 성과 나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고객에게는 기꺼이 친구와 연인이 돼주는 특별한 ‘능력’도 부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대부호이자 80대의 연로한 귀족 마담. D(틸다 스윈턴 분)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생전 고인과 절친한 친구이자 연인이 돼 주었던 구스타브는 부고를 받아들고 제로와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고인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자신에게 유산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 분)는 명화를 빼앗기기 싫어 구스타브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위협을 느낀 구스타브는 제로와 함께 그림을 훔쳐 달아나고, 드미트리는 잔혹하기 짝이 없는 수하의 살인마 조플링(윌렘 데포 분)을 풀어 뒤를 쫓는다. 여기에 헌병대 대장인 헨켈스(에드워드 노튼 분)가 가세하면서 구스타브 일행은 궁지로 몰린다. 이들의 기상천외한 탈주와 도주극이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꿈 속의 꿈, 그 속의 다시 꿈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내레이션이 불러일으키는 호기심을 따라 가장 먼저 흥분하는 것은 관객의 눈이다. 가깝게는 전작인 ‘문라이즈 킹덤’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맥스군과 사랑에 빠지다’ ‘다즐링 주식회사’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등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환상적인 동화 같은 색감과 기하학적인 화면구도가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는 1920년대 후반에서 시작해 1930년대, 1960년대, 1980년대, 그리고 현재까지 이르는 시간을 담고 있는데, 시대에 따라 화면비율을 1.37:1에서 1.85:1. 와이드 스크린까지 조정하며 웨스 앤더슨 특유의 섬세한 스타일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정경부터 실내의 소품까지 컷 하나 하나가 ‘아트북’이다. 시각적 흥분의 뒤를 따르는 것은 매력적이고 개성적인 인물들의 향연이며, 복잡하게 얽혀들어가면서도 긴박감을 잃지 않고 꼬리를 잇는 사건들이다. 여기에 누아르를 방불케 하는 범죄와 살인, 음모, 미스터리, 그리고 경쾌하고 코믹하게 펼쳐지는 액션도 유려하게 섞여 들어간다. ‘올스타 드림팀’급 캐스팅이 각각 배우들의 이름만큼이나 명연들이 볼만하지만, 특히 랄프 파인즈가 연기하는 구스타브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매력적인 인물이다. 자유롭고, 수다스럽고, 유머러스하며, 인간적이고, 냉소적인, 극중에서처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영화는 크게 보아 마담.D의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제로와 그의 연인 아가시, 호텔지배인협회 회원 아이반(빌 머레이 분) 등 조력자가 더해진 구스타브의 편과 고인의 아들 드미트리, 그의 수하인 조플링, 헌병대 대장 헨켈스 등의 대칭구도를 이룬다. 실제 지명이나 국가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치즘과 파시즘이 창궐했던 당시 유럽사가 반영됐다. 인종 문제와 동성ㆍ자유연애, 파시스트 권력에 대한 이슈들이 상징과 풍자로 작품 곳곳에 삼투돼 있다. 구스타브와 조력자들이 보여주는 행동에서는 ‘쉰들러 리스트’ 같은 작품들이 다루었던 주제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나치 전범 재판에 대한 탁월한 기록이자 분석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었으며, 특히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과 글에서 이 영화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열린 제 6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이다. 20일 개봉.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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