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1살 언니가 주범? 한심한 재판 분노”
뉴스종합| 2014-03-25 11:55
계모 폭행 울주사건등 잇단 전담
무성의 · 형식적인 사법당국에 일침


“왜 이렇게 무성의하게 형식적으로 수사하고 재판하는지 화가 나요.”

지난 21일 만난 이명숙 변호사(51ㆍ법무법인 나우리 대표)는 아동학대 사건을 대하는 사법당국의 안일한 인식을 지탄했다.

이 변호사의 전문분야는 이혼 소송이지만, 오랜 기간 여성ㆍ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론활동에 힘써왔다. 이러한 이력 덕에 몇 해 전부터 ‘부업’들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가니 소송 이후에는 장애인 관련 문의 전화가 쇄도했고,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에는 학교 폭력 관련 문제들을 많이 상담했죠.”

게다가 최근 연달아 터진 아동학대 사건으로 새로운 짐이 또 생겼다. “소풍 가고 싶다”고 한 딸을 계모가 숨지게 한 ‘울주 사건’, 아이를 골프채로 폭행해 사망케 한 ‘건희 사건’ 등 최근의 아동학대 사건 하나하나가 그의 손을 거치고 있다.

그 가슴 아픈 사연들 중 그는 경북 칠곡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사법당국의 문제점을 명료하게 지적했다.

8세 여자아이가 계모와 언니에게 폭행당해 사망했다는 사건이었다. 아이의 시신은 친모가 못 알아볼 만큼 멍투성이였다. 경찰ㆍ검찰은 ‘인형 때문에 동생 배를 찼다’는 11세 언니의 말을 믿고 언니를 주범으로, 계모를 공범으로 재판에 넘겼다.

이 변호사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언니가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애를 보호하는 고모나 친엄마와 연락하면서 전문가들과 얘기해도 다 아니라고 얘기하거든요. 언니가 제대로 얘기하면 다 밝혀질 텐데….”

하지만 언니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두 달 뒤 계모가 구속됐는데 그동안 언니가 엄마 아빠랑 같이 살면서 경찰 조사 받았어요. 동생이 맞아 죽는 걸 본 언니가 제대로 된 진술을 할 수 있었을까요?”

법원 역시 한심했다. 첫 법정 진술날 학대에 가담한 아버지가 언니의 손을 잡고 법원에 왔다. 방청석엔 계모의 외가 쪽 식구들이 앉아 있었다. 판사는 그제야 비공개 재판을 선언하며 모두 퇴정시켰지만, 이미 아이는 위축된 상태였다.

“아동학대의 기본은 형제가 같이 학대를 받는 겁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학대예요. 언니는 더 많이 맞으면서 살아왔어요. 온몸에 멍이 있죠. 동생이 사망했으면 바로 격리시켜야 해요.”

이 변호사는 언니의 안전을 위해, 언니가 진실을 증언하게 하기 위해 학대한 부모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노력하기를 3개월여, 얼마 전 언니를 보호하고 있는 고모로부터 ‘애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전화가 왔다. 언니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언니는 계모가 동생을 발로 찍었다고 말했다. 화가 나면 자매에게 청양고추를 10개씩 먹으라고 했고, 물 한 모금 없이 이틀을 버티게 하는가 하면, 팔을 부러뜨리고도 방치했다. 


법원은 예정돼 있던 결심을 미루고 언니의 달라진 증언을 들었다. 이로 인해 사건은 현재 새로운 전기를 맞은 상태.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이 변호사는 “경찰ㆍ검찰ㆍ법원이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아이에게 최선의 조치가 뭔지를 좀 더 사려깊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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