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의 말을 빌리자면, 박 대통령은 출국 때만해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는데 12시간 비행 중 전용기 안에서 한숨도 자지 않고 순방준비를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시차 때문에 도착 후에도 각종 일정을 진행하고 한중, 한미일 정상회담 준비를 하면서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해 급속도로 피로가 커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일 청와대 규제개혁장관회의를 7시간 넘게 주재하고 곧이어 21~22일에도 해외순방 준비로 이미 휴식은 제로상태인지 오래였다는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의원 시절 미니 홈페이지에 올려 화제가 된 국선도 수련 모습. |
이로 인해 박 대통령은 24일 네덜란드 국왕이 주최하는 만찬 행사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대신 보냈고, 25일에는 핵안보정상회의 본회의 세션2와 공식 사진촬영에 참석한 뒤 이후 업무오찬 겸 본회의 세션3, 본회의 세션4, 폐회식 등에 참석하지 못했다. 또 이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접견도 취소했다.
일이 이 정도에 이르렀다면 대통령 본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더구나 박 대통령은 건강하기로 소문난 정치인이다. 20년 이상 한민족 전통 심신수련법인 ‘국선도’를 연마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때문에 박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불명예스런 일이고 더구나 정상외교에서 이처럼 컨디션 난조를 보인 것은 그 답지 않은 일이다.스스로 무리를 탓하며 몹시 억울해 했을지 모른다.
현지 어떤 뉴스에는 박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대로 복습 예습을 하느라 개별시간을 가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설마 부러 그랬을까 마는 뜬금없는 일도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대 가장 민감한 정상회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국주의를 노골화하며 우리 국민의 심장을 후벼 판 일본, 그 일본을 이끄는 아베 총리, 이를 중재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박 대통령. 워딩과 손동작 하나하나에 피 말리는 고도의 전략을 담아내야 함은 물론이었을 것이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MBC 예능프로에 출연해 국선도 물구나무 서기를 시범 보이는 박 대통령. |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결국 답은 간단해진다. 모든 가능성을 놓고 생각을 거듭해 봐도 대통령이 순방 중 공식 일정을 상당부분 소화해 내지 못한 것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이른 데는 순전히 대통령만의 잘 못일까. 대통령 주변에는 주치의를 포함해 최고 보좌진이 진 치듯 스탠바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땅히 권유하고 이해시키고 설득까지 하면서 스케줄을 관리하고 건강을 챙겼어야 했다.
설령 대통령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아 부득이 스케줄에 문제가 생겼어도 청와대 대변인이 미주알고주알 까발린 것도 정상은 아니다. 넌지시 취재루트를 열어 각을 되도록 줄이는 기법도 충분이 있다. 저간의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감각파 대변인답지 않은 플레이었다는 생각이다. 진군 중에 최고 장수의 건강 이상을 나팔 불 듯 했어야 했나 말이다. 가뜩이나 일본 언론 일각에서는 평소 이웃 나라 독신 여성지도자를 놓고 비아냥대거나 경거망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굳이 말할 것도 없이 일국의 대통령은 그 국가의 최고 존엄이다. 그야말로 국가대표 중 최고 대표다. 스포츠를 보라. 실제로 태극마크를 단 이들은 아플 자격도 없다. 부상을 당하면 국가대표 답지 않다는 호된 지적과 함께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하는 경우가 숱하다. 부상까지 피할 능력을 갖춰야 진정한 프로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꿈도 희망도 일도 건강 앞일 순 없다. 그 누구도 건강에는 예외 없다. 더구나 대통령의 건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건강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바, 박 대통령이 얼른 기력을 회복해 밝은 표정으로 독일 국빈방문에 임하고 또 큰 성과를 거두길 많은 국민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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