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포스코 공채 출신 두번째 여성 임원, 이유경 포스코엠텍 상무
뉴스종합| 2014-03-27 08:50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대학교 4학년인 첫째 딸이 초등학생이었던 십수년 전 어느 날, 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앞에 데리러오면 안될까”라고. 가슴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미안함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일도, 가정도 더 멋지게 일구는 엄마가 되는 것이 미안함을 갚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몇 년이 흘러 중학생이 된 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회사를 다닌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는 게 좋아. 나도 엄마처럼 되고 싶어.”

포스코 공채 출신 여성 중 역대 두번째로 임원이 된 이유경(46ㆍ사진) 포스코엠텍 마케팅실장 상무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입사한 지 올 해로 24년 째입니다. 입사 1년 후 결혼을 해 이듬해 큰 딸을 낳았으니 거의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일과 가정을 동시에 돌봐야 했어요.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가족과 아이들의 응원 덕분에 버텼고 여기까지 왔네요.”

이 상무는 1990년 포스코에 입사했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처음으로 여성 대졸 공채를 채용했던 때다. 졸업 후 한 IT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는 일간지 1면에 난 포스코 채용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남성과 동일한 직무에 배정한다는 파격적인 채용 조건이 그를 사로잡았다. 당시만 해도 여직원을 공채로 선발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포스코맨’의 삶을 시작했다. 수출부로 입사해 설비투자구매부서, 외자관리부서, 제강원료구매그룹 등을 거쳤다. “오늘 할 일은 무조건 오늘 끝낸다”는 당찬 근성으로 업무에 임했다. ‘여자라서 하기 어렵다’는 변명은 이 상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잖은 기록도 세웠다. 공채 출신 최초의 여성 팀장을 지냈다. 2007년에는 회사의 후원으로 1년여 간 휴직을 하며 이화여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포스코가 일부 우수 직원을 선정해 급여 및 학비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발탁된 것. 당시 함께 선발됐던 직원들 중 여성은 이 상무 한명이었다.

설비 및 원료 구매 업무를 두루 맡으며 ‘구매통’으로 성장한 이 상무는 의사결정이 빠르고 탁월한 협상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본인이 생각하는 경쟁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상무는 “직위가 올라갈수록 업무조정능력이 중요하다. 공급사, 고객사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도 서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과 가정, 학업까지 병행한 지난 시간들을 두고 그는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힘든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네 명의 자녀를 둔 이 상무는 육아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는 후배들에게도 이렇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일과 가정 생활 모두 잘하는 것이 어렵지만 지나고보면 힘들었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더라고요. 집안 일 등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받고 남은 시간은 오히려 아이들 자체에 집중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엄마가 일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준다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이 상무의 꿈은 두 가지다. 일단 포스코엠텍이 글로벌 소재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하는 일이다. 여기에 앞으로 그의 뒤를 이어갈 여성 후배들에게 “등대 같은 선배”가 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는 “여성 후배들이 나가고자 하는 길에 제가 조금이나마 등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뒷 모습을 보고 후배들이 길을 잡을 수 있도록 멋진 선배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라고 말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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