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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의 국적을 빼앗았나…존재를 부정당한 다문화 아이, 준수의 비극
뉴스종합| 2014-04-03 08:17
[헤럴드경제=윤정희(부산) 기자] 정오를 갓 지난 2일 낮, 동그란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왜소한 체구의 한 아이가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 곳은 부산에서 가장 남쪽 섬, 가덕도에 위치한 소양보육원. 몇년전 놓인 연륙교로 육지와는 이어졌지만 아직 이곳에는 세상과 이어지지 않은,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버린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서준수(가명ㆍ5세)… 아니 김준수, 느엔 준호 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국가가 마지막으로 기록했던 이름은 서준수였을 뿐이다.

이 아이가 마을을 바라보는 이유는 친구들 때문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보육원 친구들이 돌아오려면 아직 두어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지만 준수는 꼼짝않고 친구들을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또래 아이들처럼 유치원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는 준수는 유치원을 갈 수가 없다. 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이란 국적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주는 사회복지사 임정옥씨와 함께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준수(가명). 국적도, 이름도 사라져버린 자신의 처지를 알리없는 준수의 해맑은 모습이 애처롭다.

준수가 태어난 것은 2009년 5월5일. 아버지는 한국인 김모 씨, 어머니는 베트남 출신 느엔 ○○씨. 여느 다문화 가정에서처럼 축복을 받으면서 준수도 그렇게 태어났다. 1년동안 행복하게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불행이 곧 밀려왔다. 갑작스레 아빠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엄마도 그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이렇게 버려진 아이는 고모의 손에 입양돼 행복을 되찾는듯 했다. 입양후, 성도 김씨에서 서씨로 바꿨다. 하지만 이것이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로 몰랐다.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고모가 발견한 것은 준수의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서’. 아이가 오빠의 친자가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입양을 한 고모는 친자가 아니라는 것에 분노해 파양을 해버렸고, 결국 아이는 이곳, 소양보육원에 위탁됐다. 하지만 준수의 불행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1년여가 지난 후, 법원에서는 아이의 호적을 말소해 원래의 아버지였던 김 씨와도 완전히 정리했다. 법원이 준수를 무국적 아동으로 판결함으로써 2012년 6월 한국국적과 호적말소가 되면서 정부지원금이 중단되었다. 그로 인해 아이는 공립유치원을 가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보조금과 혜택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불행의 끝에서 새로운 인연도 생겨났다.

보육원에서 준수를 보살펴온 생활복지사 임정옥(54세) 씨. 준수는 임 씨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준수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엄연한 우리 아이입이다. 결코 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정부와 어른들이 나서서 끝까지 보호해줘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2년을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살아온 임 씨에게 준수는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임 씨는 방법을 찾기 위해 무던히 뛰어다녔다.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 베트남대사관을 찾아 엄마의 호적에 올리는 방법도 의논해봤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을 때는 불법체류자를 도와준다는 오해와 압력도 받았다. 이에 굴하지않고 임 씨는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에 이 사건을 의뢰했고, 결국 이 문제는 이주와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에게 전해졌고 부산 해운대구의회 김강모 의원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싶어요. 맛있는 과자도 먹고, 유치원도 가고 공부도 하고 싶어요.”

그저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공부하는 것이 소원인 준수. 보육원 앞마당에 앉아 마을 아랫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준수가 진정 찾고 싶은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성씨’나 ‘국적’이 아닌 그저 순수한 자신의 존재가 아닐까.

cgn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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