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왜 유독 ‘도쿄지점’만 이럴까?
뉴스종합| 2014-04-10 11:08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최근 국내 은행의 일본 지점이 ‘비리의 온상’으로 떠올랐다.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던 직원들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국내 은행 해외 점포 150곳 중 고작 10곳밖에 없는 일본에서 유독 사건ㆍ사고가 많은 것은 왜일까.

이런 문제는 부동산 임대사업자에 대한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시작된다. 국내 은행 일본지점의 가장 큰 고객은 바로 일본에 진출한 대기업의 자회사나 재일교포다.

일본지점들은 ‘제로’ 금리인 일본 은행들과 조달 비용이 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 일본 내수시장에서 경쟁력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일본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자회사에 본사의 연대보증을 받아 대출하거나 재일교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 시장의 경영상황이 악화되자 은행들이 해외지점을 압박했다. 국내보다 수익률이 양호한 해외지점의 외형을 확장하라는 게 본점의 방침이었다. 이에 일본지점들이 경쟁적으로 임대사업자에 대한 부동산 담보대출을 확대했다.

일본의 제1금융권은 부동산 담보대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담보물 가치에 대한 변동성이 커지자 건전성 유지 차원에서 신규 부동산 담보대출을 꺼리고 있다. 따라서 자금조달 경쟁력이 떨어지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외국계 은행 지점이 틈새시장에 파고 들었다.

문제는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는 데 있다. 일본은 LTV(담보인정비율) 규제가 없어 담보물 가치의 10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임대사업자는 대출만 받으면 자신의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임대사업이 가능하다.

1금융권에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임대사업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있다 보니 업자들은 ‘리베이트’를 주고라도 대출을 받으려 한다.

일본 금융계에서 리베이트 관행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시장의 불균형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의 ‘끼리끼리’ 문화도 비리를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했다. 일본에선 기존 고객을 통해 신규 고객을 소개받는 ‘알음알음’ 영업이 많다.

거래 관행도 중요하게 생각해 영업사원에게 건네는 리베이트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긴다. 국내법상 대출 대가를 받는 것은 불법이지만, 당장 고객의 ‘괘씸죄’를 피하자는 생각에 리베이트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담보 위조’와 ‘금액 쪼개기’도 성행했다.

여기에 폐쇄적인 문화 탓에 같은 지점 직원이라고 해도 대출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리베이트가 얼마나 오갔는지 알기 어렵다. 리베이트를 거절하기 힘든 분위기와 받아도 드러나지 않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본지점 직원들에게 비리의 유혹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 가면 집 한 채는 살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이제 소문이 아닌 게 돼 버렸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이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해외지점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일본 내 특수한 상황이 맞물리며 일본지점의 비리가 봇물처럼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세 코스에서 비리 백화점으로 추락한 일본지점. 국내와 현지 감독당국이 감시한다고 하더라도 음성적 불법대출을 잡아내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곪을대로 곪은 게 한꺼번에 터졌다.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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