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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랩] “너희들 먼저 구하고...” 못다 핀 22살 승무원
뉴스종합| 2014-04-17 11:38
아비규환이었다. 배는 기울고 물건들은 깨지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나뒹굴었다. 불안과 공포뿐이었다. 탈출은 커녕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물은 차오르지만 누구하나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선장마저 배를 버리고 떠났다. 하지만 여승무원 박지영 씨는 승객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박 씨는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던 세월호에 끝까지 남았다. 동생같은 학생들을, 부모님같은 승객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선체가 기울어 움직이지도 못한 상황에서 박 씨는 당장 구명조끼부터 구하러 다녔다.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지만 배 곳곳을 돌아다니며 있는대로 가져와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여기저기 긁히고 다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학생들에게는 “우리 모두 구조될거야”라며 마음부터 달랬다. 


하지만 순식간에 배에 물이 차올랐다. 상황이 급박해졌다. 박 씨는 학생들을 무조건 밖으로 대피시켰다. 배는 갈수록 기울어졌다. 물은 계속 들이 닥쳤다. 박 씨는 “빨리 바다에 뛰어들어라. 높은 데로 올라가라”고 목이 쉬어라 외쳤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문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학생들과 승객들을 밀쳐내기만 했다. 밖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본인의 몸에는 구명조끼 하나 없었다.

박 씨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한 학생은 “승무원 누나가 나보고 빨리 위로 올라가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도 “모두 무서워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홀로 우리에게 용기를 줬다”고 전했다. 한 승객은 “3층에 있던 여승무원이 모두가 탈출하는 마지막까지 안내방송을 하고, 학생들에게 먼저가라고 고함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세월호 첫 사망자로 확인된 이는 박 씨였다. 힘든 가정환경에서도 늘 밝았던 박씨. 대학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청해진해운에 입사했다. 아버지는 3년 전 간 질환을 오래 앓다 돌아가셨다. 홀어머니, 여동생과 살며 가계를 도왔다. 박 씨는 13시간 이상 배에서 일하면서도 힘든 내색없이 늘 웃었고 인사성이 밝았다고 한다. 의리와 자립심도 강해 집안의 기둥이었다는게 유족들의 말이다.

박 씨는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정작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구명조끼를 건네받던 한 학생이 ‘왜 언니는 안 입느냐’는 물음에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해주고 나중에 나갈께”하고 말했던 박 씨. 그 마지막은 ‘마지막 생존자’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이 됐다.

학생들을 위해 생명까지 양보한 박 씨. 그녀의 나이 역시 채 피지 못한 ‘22살’이다.

권남근 기자/happy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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