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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지시한 뒤에야 구조현장 CCTV 설치한 나라
뉴스종합| 2014-04-18 09:23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생사 여부가 불분명한 피붙이를 차가운 바다 속에 남겨둔 부모들은 예상밖으로 대통령에겐 4~5차례나 박수를 보냈다. 국무총리ㆍ국회의원 등 한자리 한다는 사람들이 왔을 땐 물병세례와 욕설을 퍼부었던 애끓는 탄성은 자식을 영영 잃을지 모를 상황에서 국가수반에겐 “우리 애 좀 꺼내달라”며 애원하는 쪽으로 다소 누그러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전격 방문해 예정없이 진행한 문답에선 대참사를 맞딱뜨려 우왕좌왕하는 공무원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청 등 공복(公僕)이 자신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았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 “높은 사람들이 말을 안 듣고 있는데 명령 좀 내려달라”고 애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들이 친 박수는 국가적 재앙을 시스템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대통령에게 매달려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날 오후 4시 20분께 박 대통령이 체육관에 들어섰을 땐 분위기가 험악했다. 청와대 경호실도 상황이 나쁘다며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얘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강행했다. 


가족들은 호소했다. “다 거짓말 하고 있다”, “여기가 상황실인데 현장 정보가 아무 것도 안들어온다”고 박 대통령을 향해 소리쳤다. 군중 속 한 가족은 “잠수부들이 그냥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며 “최악의 상황에서 전원 사망했을 때 어떻게 인양할 건지 대책을 세워서 알려달라”고 했다. 구조작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데 대한 절규였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잠수부 500명을 투입하고 있다”, “(여객선에) 공기를 집어넣기 위해 진입로를 확보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성난 가족들의 욕설과 질타만 들어야 했다. 이제껏 자세한 설명을 내놓지 않다가 대통령이 등장한 뒤에야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캐비닛(Cabinetㆍ내각) 밖으로 나온 박 대통령은 담대했다. 그는 “뉴스보다도, 누구보다도 가족들이, 애가 타고 미칠 것 같은 이분들이 알아야 된다 이거죠”라며 현장 구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스크린 설치를 지시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사고 발생시 1차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진 선장과 관련한 질문에선 “엄벌에 처할 것이다. 반드시”라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또 신뢰의 문제를 지적한 뒤 “모든 걸 가족분들 위주로 하고, 하다가 안되면 왜 안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일 먼저 알려드리라”며 “오늘 이 자리에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해 다시 한 번 박수를 받았다. 앞서 해경청장은 “제가 중요한 사안을 계속 와서 브리핑하고, 서해지방해경청장을 상주하도록 하겠다”고 뒤늦게 입장을 정리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현장 문답을 마치고 오후 8시 넘어 청와대로 돌아왔으며, 김기춘 비서실장은 청와대 참모를 모아놓고 현장에서 나온 얘기들을 정리ㆍ이행키로 했다. 지휘체계 정비 방안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이 설치를 약속한 사고현장 CCTV는 이날 오후 9시 이후 가동됐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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