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초능력 다람쥐, 소통 · 치유를 ‘말하다’
라이프| 2014-04-18 12:03
 ‘상처’ 간직한 가족·이웃 놀라운 경험
사랑 · 믿음의 힘이 주는 기적같은 변화

도민준의 책 ‘…신기한 여행’ 쓴 저자
어른들을 위한 또하나의 감동 스토리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K.G. 캠벨 그림, 노은정 옮김
/비룡소
  최근 종영한 SBS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대표적인 수혜자는 케이트 디카밀로 작가의 동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다. 이 작품은 사랑을 받을 줄만 알고 할 줄은 몰랐던 도자기 토끼 인형이 긴 여정을 통해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중 주인공 ‘도민준(김수현 분)’이 읽어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1/4분기 내내 주간 베스트셀러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이 같은 돌풍은 단순히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드라마에 등장한 화제작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이 드라마 종영 후에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사랑과 믿음의 기적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담은 따뜻하고 섬세한 문장이 주는 짙은 여운 때문이었다. 디카밀로의 신작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역시 책장을 덮은 후에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담담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냉소적인 소녀 ‘플로라’와 갑작스런 사고로 초능력을 갖게 된 다람쥐 ‘율리시스’다. ‘플로라’의 이웃집에 사는 ‘틱햄’은 부인 ‘투티’를 위한 생일선물로 고성능 진공청소기 ‘율리시스 2000X’를 마련한다. 이 청소기는 너무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어 ‘투티’가 읽던 책은 물론 정원에 있던 다람쥐까지 삼켜 버리고 만다. 그 광경을 목격한 ‘플로라’는 인공호흡으로 다람쥐를 살려내고 ‘율리시스’라는 이름을 붙인다. 오로지 먹을 것을 향한 생의지밖에 없었던 ‘율리시스’는 되살아난 이후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초능력 영웅으로 믿는 ‘플로라’를 통해 사람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특별한 다람쥐로 변모해 간다.

‘율리시스’는 ‘플로라’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플로라’는 병균을 옮긴다며 ‘율리시스’를 없애려 드는 어머니로부터 ‘율리시스’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냉소를 버리고 사랑과 기적을 믿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로맨스 소설 작가이지만 정작 가족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법은 몰랐던 어머니는 ‘율리시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딸을 이해하고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얻는다. 어머니와 이혼해 소심해진 아버지는 ‘율리시스’와 함께 하며 삶의 활력과 웃음을 찾는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상처로 인해 시각장애인이 됐다고 믿고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윌리엄’은 ‘플로라’와 함께 ‘율리시스’를 구하다가 빛을 되찾는다. ‘율리시스’의 진정한 초능력은 말하는 능력도 날 수 있는 능력도 아닌 소통과 치유의 힘이었던 셈이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의 작가 케이트 디카밀로의 신작 ‘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는 사랑과 믿음의 기적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을 담은 따뜻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이 세대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공감의 정서를 가지는 이유다. [사진제공=‘초능력 다람쥐 율리시스’ 북트레일러 유튜브 캡처]

갈등하는 캐릭터 사이에 완충지대를 형성하며 ‘플로라’의 고민을 들어주는 ‘미이스챔’ 박사의 말들 또한 예사롭지 않다. 작가는 ‘미이스챔’ 박사의 입을 빌려 ‘플로라’ 주변으로 한정돼 있던 사랑과 믿음의 기적이라는 주제의 범위를 인류애로 확장한다. 이로써 작품은 보편적 공감의 정서를 확보하고, 어른들도 볼만한 동화라는 상찬을 넘어서는 경지에 다다른다.

“파스칼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을 수도 있다고, 그렇게 믿으면 온갖 것을 얻을 수 있는 반면 잃을 것은 없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믿는 쪽을 선택했을 때 잃는 게 뭐니? 아무 것도 없어! 예를 들어서 이 다람쥐를 봐. 율리시스 말이다. 얘가 타자기로 시를 쓸 수 있다는 걸 내가 믿느냐고? 나는 당연히 믿지. 그런 게 가능하다고 내가 믿는다면 세상에는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하게 되거든.”(158~159쪽)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율리시스’가 써내려간 시들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율리시스’의 소박한 시어는 선명한 잔상을 남기며 마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좋다/네 동그스름한 머리가,/눈부신 초록색이,/눈길을 사로잡는 파란색이,/이 글자들이,/이 세상이, 네가./나는 아주, 아주 배고프다.”(80쪽)

마지막 장에 실린 ‘율리시스’의 시 ‘플로라를 위한 말들’은 작품의 절정이다. 미사여구 없는 시어는 담담하지만 작품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어 단단하다. 단단한 만큼 울림은 크다.

“네가 없다면/그 무엇도/쉽지 않을 거야./너는 모든 것이니까,/알록달록 사탕가루,/쿼크, 자이언트 도넛./서니사이드 업 달걀 프라이./그게 다/바로 너니까,/나한테/너는/영원히 팽창하는/우주니까.”(280쪽)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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