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조선시대 직업 목록에는 농부ㆍ상인 외에 소방관ㆍ변호사도 있었다
라이프| 2014-04-23 06:41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조신선이라는 자는 책을 파는 아쾌(사고파는 사람 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로 붉은 수염에 농담을 잘 했다. 눈에서는 번쩍거리는 빛이 났다. 모든 책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어서 마치 군자와 같았다.”

이는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수록된 ‘조신선전(曺神仙傳)’의 일부로 책을 사고팔던 조생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8세기 조선의 한양 땅에도 오늘날의 중고책 매매상 같은 이가 존재했다는 얘기다. ‘흥부전’에는 굶주림에 지친 흥부가 환곡을 받아보려 관아를 기웃거리자 이방이 양반의 매를 대신 맞고 30냥을 받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매로 품을 파는 이른바 매품팔이가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의 직업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농부나 상인, 주모와 보부상, 백정, 기생 정도를 떠올린다. ‘조선직업실록(북로드)’은 조선이 500년이라는 긴 역사와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작지 않은 나라였고, 생계를 이어가고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직업들이 많았음을 밝히며 이 같은 세간의 인식을 뒤집는다.

이 책은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21가지 직업들을 소개하며 당시의 생활상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직업들을 3부로 분류해 설명한다. 1부는 나라의 필요에 의해 녹을 주고 부렸던 공무원 같은 직업들이다.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어서 화재에 취약했던 한양에는 세조 때 멸화군이라는 소방관이 등장했고, 북방정책을 폈던 조선 초기에는 체탐인이라는 첩자가 있었다. 억불정책의 희생자인 승려들은 국책사업에 동원돼 한증소를 운영하거나 시신을 묻는 일을 했다. 여노비들을 여형사 다모로 활용하기도 했다. 


2부는 선조 때 잠시 민간에서 신문을 발행했던 기인, 인조 때 윤선도를 상대로 70여 명의 노비가 걸린 재판에 나선 변호사 외지부, 운종가에서 상인과 소비자를 이어준 이른바 ‘삐끼’ 역할로 먹고산 여리꾼, 사람들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생계를 이어간 재담꾼 등 특이한 자영업을 소개한다.

3부에선 곡비와 매품팔이를 비롯해 양반가의 아녀자들이 운영했던 내외술집, 조선 후기 과거시험장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거벽과 사수와 선접꾼, 노비 사냥꾼이 추노객 등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사람들의 직업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소유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누군가의 손을 빌린다. 이는 곧 직업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직업은 그 시대의 욕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직업들의 탄생과 소멸의 이야기는 교과서로 접할 수 없는 다채로운 조선의 역사를 전하며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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