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있을 곳엔 없고, 없어야 할 곳에만…제자리 못찾는 대한민국의 ‘칸막이’
뉴스종합| 2014-04-24 11:07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면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주장했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승객보다 앞선 세월호 선장의 탈출이 그러했고, 정부 부처간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는 이야기가 비난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인재(人災)’를 넘어 ‘관재(官災)’로까지 이야기 되는 것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의 무기력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부처간 ‘칸막이 행정’으로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 모습은 고질적인 병폐가 어느정도인지 여과없이 보여줬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국방부, 해군, 소방방재청 등 정부 부처와 당국이 보여준 사고 대응 수준은 무능했고 이기적이었다.

매 정부 때마다 그렇게도 외쳤던 부처 간 협업은 우리 아이들이 몸부림치면서 죽어가는 세월호 침몰 그 순간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1분1초가 긴박한 순간에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갈팡질팡했다. 사고를 키운 것이다.

탑승인원, 사망자, 구조자, 실종자 숫자가 수차례 뒤바뀌었고, 생존자 명단과 실종자 명단이 왔다 갔다 했다. 발인을 앞두고 시신이 뒤바뀐 사실을 뒤늦게 알기도 했다.

차디찬 물속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칸막이’가 있어야할 곳에 아직까지 칸막이가 설치되지 않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그렇게 요구했는데도, 무시되고 있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등 기댈 곳 하나 없다. 잠시 누워 눈을 붙이려고 해도 얇은 깔개 위라 그마저도 쉽지 않다. 뻥 뚫린 공간이 마치 피난민 수용소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과연 이게 최선일까.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이재민 대피소에 칸막이를 설치한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 씨의 말이 송곳처럼 가슴을 찌른다.

“사생활이 없으면 이재민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 받게 됩니다. 그래서 대피소에 칸막이를 만들었습니다. 종이 기둥과 커튼을 간단히 이용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있어야 할 데 없고 없어야 할 데 있는 게 있다. ‘칸막이’다.

dsu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