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린
영화 속에서 담긴 시간은 단 하루이지만, 크게는 정조와 그를 없애려는 노론벽파의 권력투쟁을 축으로 다양한 인물군상의 드라마가 그려진다. 집권 1년의 정조는 궁궐 속에서 고립무원이다. 정조에겐 ‘할마마마’인 정순왕후(한지민 분)가 군왕인 손자를 고꾸라뜨리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이와 발톱을 드러내고, 정순왕후를 등에 업은 노론 벽파가 조정의 경제권과 군권을 모두 장악하고 왕위마저 찬탈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궁 내의 모든 칼이 정조를 겨누고 있지만, 정조의 편엔 단 두명, 왕의 서가를 담당하는 내시 상책(정재영 분)과 호위 부대인 금위영 대장 홍국영(박성웅 분)뿐이다. 정순왕후와 노론 세력이 반정과 암살 음모를 꾸미는 동안, 정조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상책이 괴이하고 수상한 행동으로 홍국영의 감시에 걸려들고, 정조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면초가의 처지가 된다. 정순왕후는 노골적으로 정조에게 경고를 보내고, 금권과 군권을 쥔 노론은 인간병기를 ‘사육’하는 비밀조직의 하수인 광백(조재현 분)을 통해 왕의 목을 칠 살수 (조정석 분)를 골라내 은밀한 임무를 맡긴다.
‘역린’은 개혁군주인 정조와 당대의 보수파 노론의 권력투쟁 소용돌이 속에 다양한 인간적인 감정과 관계들을 풀어놓는다. 정치적으로는 개혁군주와 보수신권이 대척점을 이루고 인간적으로는 희생과 헌신의 이타심과 생존과 이해의 이기심이 저울의 양편에서 팽팽한 대칭을 만든다. 누가 누구에게 칼을 겨누고 독배를 들이밀 것인가 시시각각 향방을 점칠 수 없이 펼쳐지는 드라마가 ‘역린’의 미덕이다. 그 긴장과 갈등, 대결구도 속에서 현빈의 정조는 지, 덕, 체를 완벽하게 갖춘 군왕이자 지도자로 이상화된다. 그것은 한국영화에서 무수하게 반복된 대중의 열망일 것이다. 30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