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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재계 후계의 미래, 허구(許·具)에 있다
뉴스종합| 2014-05-07 11:07
삼국지 주인공의 한 사람인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는 적통 후계자에게 모든 권한을 승계했다. 이 때문에 신권(臣權)을 견제할 세력이 약해져 결국 군벌 사마염(司馬炎)의 진(晉)에 반세기만에 멸망한다. 진은 위의 실패를 거울 삼아 황족들을 각 지방의 왕에 봉한다. 하지만 무제(武帝) 사마염 사후 형제들이 황위를 놓고 벌인 ‘팔왕의 난’으로 진 역시 50여년만에 무너진다.

1인 통치체제인 로마제국은 혈연보다는 실력으로 황제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제국 말기에는 황제, 공동황제들이 난립한다. 로마 이후 유럽의 패권을 승계한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 고유의 분할승계 원칙 탓에 귀족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843년 베르뎅 조약으로 나라가 셋으로 나뉜다. 유럽이 다시 하나로 뭉친 것은 1993년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지면서다.

민주정치로 이제 국가 권력의 세습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권이나 가문의 적통은 여전히 세습하는 경우가 많다.

해방 후 우리 기업들은 위와 진, 로마와 프랑크의 장점만 취한 방법을 택해왔다. 적통 후계자에 주력기업을, 나머지 자녀들에는 비주력기업을 물려주는 방법이다.

그런데 꽤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방식은 끊임없이 기업이 분화(分化)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 자손이 늘어나는 속도를 기업의 분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기업을 나눠주지 못하면 지분을 쪼개서 나누는 방식이 불가피하다. 이미 국내에도 친형제 간 지분률이 팽팽한 기업들이 적지 않다. 친형제야 그래도 끈끈한 결속력을 기대할 만 하지만, 4촌에서 6촌으로 멀어지면 이 마져도 기대가 어려울 수 있다. 두산, 금호 등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은 그룹들도, 그 발발 시기를 보면 4촌들의 지분률이 높아진 때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부자간 지분 매매가 활발한 GS와 LS를 눈여겨 볼만하다. 이미 종가(宗家) 격인 (주)GS, (주)LS의 주요주주가 4촌에서 6촌으로 넘어가고 있다. 다행히 친형제였던 창업세대 가문별로 지분률 제한이 아직 유효한 덕분에 경영권 다툼은 없다. 하지만 국내 주요 대기업 가운데 가장 빠르게 오너 일가 주주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총수 1명이 그룹 경영을 좌우하던 한국형 오너경영 체제의 미래일 수 있다. GS와 LS의 오너 가문이 앞으로 어떤 지배구조를 갖춰가느냐는 재계 전체가 눈여겨 봐야할 관전포인트다.

재계팀장/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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