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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어르신도 ‘까똑~’ 생활 곳곳 B급 감성충만
뉴스종합| 2014-05-16 11:02
60대이상 스마트폰 이용 증가…최신 트렌드 따라가려 열공중
동창회방·산악회방·가족방 등 단체 대화방서 유머 주고받고…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게 빨간 등산복·꽃무늬 바지도 과감하게


#. ‘카똑’. 메시지 알람 소리에 김명복(65) 씨는 익숙치 않은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유심히 들여다 본다. 실버 미팅에 대한 참가 일정과 장소가 안내된 회신 메시지였다. 김 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홀로 외로이 살면서 노년의 적적함을 달래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구청에서 진행하는 실버 미팅 행사에 참가 신청서를 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의 스마트폰에서 두 번째 ‘카똑’ 소리가 울린다. 딸에게서 온 메시지다. “어르신 전용 극장에서 영화 ‘벤허’를 상영한다는데 보러 다녀오실래요?”라고 한다. 젊은층은 스마트폰의 문자판을 보지 않아도 순식간에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지만 김 씨는 한 글자 한 글자 찍을 때마다 손끝에 온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김 씨는 천천히 “그래 언제니?”라고 문자판을 눌렀다.

#. 이순자(60ㆍ서울 면목동) 씨는 무릎 연골이 약해지면서 매일 관절염 약을 챙겨먹지만 오는 주말 친목계 사람들과 함께 동해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부부 동반 모임으로 가는 여행이다 보니 이 씨는 남편과 커플로 입을 연두색 점퍼도 구입했다. 한껏 멋을 부릴 생각에 큼직한 부엉이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큐빅이 박힌 선글라스, 반짝이 무늬가 들어간 운동화도 준비했다. 그러자 이를 본 아들이 말을 건넨다. “엄마가 키치(Kitsch) 패션을 아네”

#. 중소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직장 17년차 홍 부장(45)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7명의 부원을 모두 초대했다.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대화가 가능하다 보니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부원들의 취향과 일상 생활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홍 씨에게는 이 같은 단체 대화방이 몇 군데 더 있다. 고교 동창회방, 산악회방, 가족방 등이다. 홍 씨는 단체 대화방을 통해 명언이나 여행 사진을 공유하고 때때로 키득거리게 만드는 B급 유머를 주고 받는다.

이처럼 젊은 청장년층부터 은퇴하신 어르신들의 삶 곳곳에는 키치적이고 B급 감성이 물씬 풍기는 요소들이 녹아 있다. 여기서 키치란 ‘속악한 것’을 의미하는 본 뜻에서 벗어나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빗나간’, ‘독특하거나 엉뚱한’, ‘유머러스한’을 의미하는 대명사다.

이를 테면 연세가 지극하신 어르신들의 스마트폰에서 귀엽고 앙증맞은 목소리의 알람 소리가 울리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어르신들은 “디지털기기를 만지는 건 행복한 노년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입을 모은다. 특히 60대 이상 시민들은 스마트폰 이용방법을 배우기 위해 각 지자체에서 열리는 정보화 교육 강의를 신청하는 등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중이다.

요즘 어르신들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행복한
노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
지 않기 위해 정보화 교육을 받는 등 부단히 노력 중이다.

아울러 최근 노인협회와 일부 지자체에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레크레이션을 즐기며 자기소개, 대화 등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꾸미는 실버 미팅을 주선하고 있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행사 뒤 커플이 된 참가자들에게는 커플티와 실버 영화관 관람권도 제공된다. 남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던 실버 미팅이 이제는 효자 미팅으로 거듭난 셈이다.

구난시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 원색이 가미됐던 등산복은 어느새 50대 사이에서 영(young)해 보이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 했다. 새빨간 등산복을 입고 분홍색 손수건을 목에 두르거나 하늘색 점퍼를 입고 파란색 두건을 머리에 두르는 식이다. 세련되고 젊은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여성들은 꽃무늬 바지를 입기도 하고 남성들은 기꺼이 파마를 한다.

또 SNS상에 만들어진 동창회 단체 대화방에서 활발하게 주고 받는 B급 유머도 키치적인 요소가 물씬 묻어난다. 예컨대 “혼자만 보세요. 이거 진짜 죽임”이라는 글의 링크를 클릭하면 흰죽 사진이 나오고, “김하나 전신 노출 사진”이라는 글의 링크를 클릭하면 검은 김 한 장이 덩그러니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이 나오는 식이다.

이정아 기자/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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