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서울, 산타페 그리고 감 시리즈로 스타작가 반열에 오른 서양화가 오치균이 ‘빛(The Light)’을 주제로 1년만에 인사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붓 대신 물감을 두껍게 써서 손으로 찍고 누르고 문지르는 특유의 화법(畵法)으로 생명력을 얻은 빛이 실제 등불이 발화한 것처럼 생생하다.
사실 오치균은 서양화가 중 몇 안되는 소위 ‘부자’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림을 내놓기만 하면 비싼 가격에 팔릴 뿐만 아니라 특정 화랑에 전속 계약으로 매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신사동에 수백억짜리 건물 3동을 소유한 ‘회장님’이기도 하고, 이 때문에 압구정에 갤러리를 열었다는 ‘루머’에 종종 시달리기도 한다.
A lamp,116 x 78cm, 2013 [사진 제공=노화랑] |
예술가가 가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차치하고라도, 온 몸의 절반 이상이 용, 해골, 나비 문신으로 뒤덮인 근육질의 ‘남자’ 오치균을 보면 고향의 감나무와 같은 목가적 풍경의 그림을 그린 작가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가 스스로도 대중 목욕탕을 갈 때마다 ‘조폭’을 대하듯 흘끔거리는 시선을 느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예민하고 ‘깐깐한’ 성격으로도 유명한 오치균은 지난해 여름 공황장애를 또다시 겪으며 무릎 아래 하반신 마비 증상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림이고 뭐고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작가는 빛에 개인적인 절실함을 담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등잔을 썼는데 어쩌면 그렇게 잘 꺼지던지…. 촛불, 등불 같은 것은 희망의 상징 아닌가. 그런데 사실 촛불과 등불은 그렇게 툭하면 꺼져버리고 만다.”
Shoes on the studio floor, 100x67cm, 2014 |
오치균은 1985년 초기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빛’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뉴욕 유학 시절 가난하고 외로웠던 청년 오치균의 삶이 녹아든 ‘인체’ 시리즈에선 어두운 고통 속에 한줄기 빛이, 오치균을 유명 작가로 만들어 준 ‘감나무’ 시리즈엔 평화롭고 따뜻한 빛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번 ‘빛’ 시리즈에서는 그야말로 ‘빛’ 그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심장에 무리가 오고 몸에 이상을 느끼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느꼈던 간절함이 빛으로 투영됐다.
“스케이트만 타던 김연아 선수가 은퇴 후에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나 또한 평생 그림만 그렸는데 이것 말고 무엇을 한들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은퇴할 수 없을 것 같다.”
Armani lamp on the Santa Fe bench, acrylic on canvas, 116x78cm, 2013 |
모든 선입견을 초월해서 작가 오치균은 대중이 원하는 그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생존하는 국내 작가 중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으로도 손에 꼽힌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훌륭한 작가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독인지도 모를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오치균은 작품 생활 30여년동안 고통이 환희로, 절망이 희망으로 소재와 주제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으로 물감을 찍으며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을 그리고 있다.
“후속작이 좋지 않으면 쟤 돈 벌더니 맛 갔구나라는 말을 듣게 된다. 후속작 안 좋으면 끝장나는 거다.”
Lamp and red chair, 131x87cm, acrylic on canvas, 2013 |
그림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하다며 지금도 전시회에 걸린 그림에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계속 보인다는 오치균이 은퇴없는 ‘대가’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오치균 스스로를 넘어서는 치열함이 여전히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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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immon, 80x80cm,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