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한집 건너’ 난립 과당경쟁…주유소 혹독한 구조조정 칼바람
뉴스종합| 2014-06-10 11:02
1995년 주유소거리제한 폐지
IMF퇴직열풍 맞물려 우후죽순…적정수준에 5000곳 초과 과포화
1년 영업익 평균 3800만원 고작…작년 310곳 폐업…20%는 폐업 검토
정부 7월 거래량 주간보고로 변경…경영난 심화 우려에 집단 반발


올 들어 전국의 주유소 89개가 문을 닫았다. 지난 4월 한달 간 폐업한 주유소만 22곳이다.

한국주유소협회가 추산한 4월 기준 전국 영업주유소 수는 1만2621개. 전년대비 126개가 줄었다. 특히 개인사업자가 퇴직금 등으로 직접 차린 자영주유소는 56개가 폐업했다. 대한민국 주유소들이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셈이다.

관련업계는 국내 자동차 수와 인구를 반영한 적정 주유소 수를 7000~8000개로 보고 있다. 기름을 팔아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가 1990년대 중반부터 기름 시장에 경쟁체제를 본격 도입하면서 주유소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특히 1995년 11월 주유소 거리제한 폐지는 IMF 이후 퇴직 열풍과 맞물려 주유소 급증을 초래했다. 그 결과 1990년 3315곳에 불과했던 주유소는 2010년 1만3003개로 늘어났다.

1997년에는 석유제품가격고시제가 폐지됐다. 정부가 국제 유가, 환율 등에 따라 석유제품 최고 가격을 고시하던 방식이었으나, 석유제품가격고시제 폐지 이후 석유가격이 시장참여자들의 자율경쟁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주유소 사업자들은 주유소 수가 적정수준보다 5000개 가량 많은 ‘과포화상태’에 이르자, 무턱대고 가격을 낮춰야 하는 생존경쟁에 내몰렸다.

정부가 ‘기름값 잡기’ 일환으로 알뜰주유소를 확대하면서 주유소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는 2011년 기름값을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100원’ 싸게 팔겠다는 취지로 알뜰주유소를 도입, 각종 세제 지원으로 3년만에 1038개까지 알뜰주유소를 늘렸다. 정부는 내년까지 알뜰주유소를 1300개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출혈경쟁을 견디지 못한 주유소 사업자들은 속속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주유소협회가 전국 2704개 주유소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주유소 1곳당 연간 영업이익은 평균 3800만원 수준. 연간 매출액 평균은 37억4100만원이지만 매출원가가 35억1700만원으로 94%에 달한다. 여기에 각종 영업비용 1억8500만원을 빼면 겨우 대기업 초봉 수준인 3800만원이 남는다는 것이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족을 무급 아르바이트로 고용하는 경우도 93.8%나 됐다. 주유소 10곳 중 2곳은 폐업을 검토 중이었으며, 실제로 지난해 폐업한 주유소도 310곳에 달했다.

그나마 폐업한 주유소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돈이 없어 폐업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멀쩡한 주유소를 놀리고 있는 곳도 허다하다. 지난 4월 폐업한 주유소는 22개인 반면, 휴업중인 주유소는 411개에 달했다. 주유소 폐업시 시설철거비용은 면적 300평, 주유소 10기, 지하탱크 6기 기준으로 약 7000만원이 소요된다. 토양정화비용도 면적에 따라 7000만~2억원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난에 처한 주유소가 1억4000만~2억7000만원에 이르는 폐업비용을 충당하지 못해 문조차 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지난 3월 주유소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유소 폐업비용을 지원하는 주유소 공제조합 설립 안이 통과됐으나, 그 지원기금 마련 주체를 놓고 업계간 진통이 상당하다.

주유소협회와 전국 주유소 3000여곳이 12일 예고한 동맹휴업도 이같은 경영난에서 출발했다. 주유소들은 정부가 가짜 석유 유통을 막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주유소 석유류 거래량을 기존 월간 단위에서 주간 단위로 변경키로 한데 대해 반발해 휴업을 결의했다. 정부는 “주간 단위 보고가 월간 단위보다 주유소 거래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가짜석유 적발에 용이하다”는 입장이지만, 주유소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정부가 짐을 얹었다고 보고 있다. 거래상황보고서 작성을 위해 추가 인력을 고용할 형편이 안되고, 무리한 규제로 과태료가 늘어나면 그만큼 경영난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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