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관피(官避)즘’ 을 경계한다
뉴스종합| 2014-06-13 11:35
관료들이 좌불안석이다. 젊은 공무원들 뿐 아니라 정년을 염두에 둬야 할 고위공직자들까지 옷 벗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민간이나 관변단체로 나갈 길이 꽉 막혀 버렸다. 공산당을 무조건 배척했던 매카시즘처럼 “관료는 안돼”식의 ‘관피(官避)즘’ 때문이다. 온 나라가 관료를 적폐(積弊)의 심장으로 여기니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국회에선 곧 전관예우 금지를 강화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논의될 참인데 그 전에 옮길 방법이 없다. 옮기려 해도 청문회 만큼이나 업무연관성 여부를 깐깐하게 따질 취업심사 때문에 쉽지 않다. 낙하산 인사 불허령에 공직사회 부정부패 잡겠다고 ‘김영란법’까지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2017년까지 5급 공무원 공개채용 선발 비중을 전체의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를 민간에서 채용하겠다고 밝힌 터라 관료사회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관료사회에 유래없는 큰 인력시장이 설 조짐이다. 청와대 수석 및 장관직 물갈이 인사에 정부 조직개편까지 맞물려 산하 행정기구와 공기업, 협회 등 유관 기관까지 엄청난 인사 수요가 생길 전망이다. 문제는 이렇게 큰 장이 열리는데 정작 그 수요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업무 연관성으로 묶인 탓에, 관피아라고 해서, 낙하산이라고 해서 나가지 못하는 자리가 엄청나게 많아질텐데 말이다.

우려대로 벌써부터 관변을 기웃거리는 이들이 눈에 띈다. 정부가 민간 부문에서 대거 인력을 수혈하겠다고 밝힌 후로 더 확연하다. 쓸 만한 사람 보다 써 주길 바라는 사람이 훨씬 많다. 당연히 ‘감’이 안되는 사람들이 엉덩이 붙히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6·4 지방선거로 약진한 정치성향 NGO 출신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행정고시 축소 및 폐지는 시류(時流)에 휘둘려 대통령이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다. 정부는 개방형 확대를 돌파구로 생각하지만 그게 그리 녹록치 않다. 자기 분야에 식견은 있을 지 몰라도 평생 국가과 국민에 헌신하겠다는 마음 보다는 스펙 더 쌓아 더 나은 곳으로 점프하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런 뜨내기 관료가 늘 수록 정책의 연속성은 담보할 수 없다.

관료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관피아 문제를 무조건 관피즘으로 몰아선 안된다는 얘기다. 모든 관료가 전관예우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검찰청 등 일부 힘있는 부처에나 먹히는 얘기다. 그걸 알면서도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이들을 여전히 뺀 채 입법예고하는 정부가 국가 대개조를 논하는 것은 이율배반 아닌가.

늘 지나침이 문제다. 세월호 분위기에 휩싸여 앞뒤 안가리고 내놓는 국민 무마용 즉흥 정책에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긴다. 국가관 없는 뜨내기 민간인이나 자격없는 관변 철새 인사들이 관료 자리를 대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 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정부조직개편 작업을 다시 들여다 봐야 한다. 다시 냉정함을 되찾아야 할 때다.

조진래 논설위원 /jjr@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