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데이터랩] 막내 손흥민의 고군분투, 그리고 눈물
헤럴드경제| 2014-06-23 11:00
전반에만 세 골을 내주자, 그라운드의 ‘미소천사’ 손흥민(22ㆍ레버쿠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구겨진 자존심에 울분이 묻어났다. 재정비 후 돌아온 후반전, 경기 시작 5분 만에 대표팀 막내는 만회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의 ‘쇼타임’에 가까운 후반 45분간은 실낱 같은 희망도 살아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라운드를 사방팔방 누비는 손흥민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운 시간이었다.

23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4시 시작된 알제리와의 H조 예선 2차전은 우리 대표팀에겐 월드컵 사상 가장 당혹스러운 결과를 안겨줬다. 2-4의 대참패, 아프리카 팀엔 사상 최다 골을 허용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왼쪽 측면 공격수인 손흥민은 이날 중앙부터 오른쪽까지 가리지 않고 움직였다. 악몽같은 전반을 마친 이후 후반의 이른 득점과 함께 경기 흐름을 바꾸며 대표팀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었던 데는 손흥민의 발 끝에서 살아난 공격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 17분 알제리의 추가골이 터진 이후에도 손흥민의 추격의지는 멈추지 않았다. 참혹하게 무너진 수비라인으로 위축된 대표팀 형들과는 달리 손흥민의 공수를 가리지 않는 빠른 움직임은 자신감이 치솟은 알제리 선수들을 위협했다. 브라질월드컵 출전선수 중 드리블 돌파 기록 3위에 달하는 ‘경계대상’답게 손흥민은 과감한 드리블로 상대 진영까지 치고 들어갔다. 손흥민의 움직임이 대표팀의 공격라인을 디자인했다. 후반 27분에 나온 구자철의 추가골도 손흥민의 과감하고 저돌적인 플레이로 첫 번째 슈팅을 할 수 있는 기점이 됐다. 영국의 축구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이날 손흥민에게 평점 8.8점을 줬다. 양팀 선수 중 최고 평점이었다.

‘에이스’는 그라운드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후회없는 플레이를 하고 오자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경기 이후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2의 차붐’은 차범근도 해내지 못한 월드컵 데뷔골을 기록했지만, 그 기쁨을 만끽할 수도 없었다.

실망했을 국민들 앞에 손흥민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무기력한 형들을 깨우려는 막내의 분전은 믿기 힘든 경기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겐 유일한 위안이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1인다역을 해낸 ‘원톱’ 손흥민을 향한 부채감이 커졌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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