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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르포] 잊혀진 그들, 지독한 ‘여름 고통’ 앞둔 쪽방촌 사람들을 아세요?
뉴스종합| 2014-06-24 08:10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고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배부른 이들에게 추위나 더위는 ‘사는 맛’일 수도 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생존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어컨이며 난방시설이며 갖출 건 다 갖춘 풍요로운 도심에서도 여전히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는 이유로 생명에 위협받기도 한다.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 가려진 ‘쪽방촌’에서는 말이다.

쪽방촌은 한국전쟁 후 여인숙 주인들이 손님 욕심에 방을 여러 개로 쪼개 만들면서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지독한 가난’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구한 사연으로 쪽방촌에 흘러든다. 직장을 잃었거나, 사기를 당했거나, 사업이 망했거나 불운에 불운이 겹쳐 삶의 터전을 잃고 쪽방촌으로 들어온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노숙 생활을 하다 겨우 쪽방촌에 방을 얻고 생의 의지를 일구는 이들도 있다.

쪽방촌은 여름은 겨울보다 낫다. 적어도 연탄값 걱정없이 한 철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하지만 쪽방촌의 여름은 어떤 여름보다 길고 힘겹고 지독하다. 헤럴드경제 사건팀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와 용산구 동자동 그리고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의 힘겨운 여름나기를 취재했다.


<남대문로5가 사람들>

[헤럴드경제=김기훈ㆍ이수민 기자] 서울역 인근 도심의 랜드마크인 서울스퀘어와 힐튼 호텔 사이, 과거 윤락가와 여인숙으로 유명했던 남대문로5가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웅크린 듯 작은 문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낡고 허름한 건물 담벼락에 ‘월세 놓음’이라는 전단이 눈에 띈다. 사람들은 이곳을 ‘쪽방촌’이라고 부른다.

지난 22일 오후 찾은 이곳 쪽방촌은 30℃에 육박하는 한낮의 열기로 숨이 막힐 듯 했다. 인근 대형빌딩이 쏟아내는 도심의 열기가 고스런히 쪽방촌을 덮고 있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해 한 중년 여성은 물 한 바가지를 퍼다 집 앞에 뿌렸다. 골목 한 귀퉁이에는 대여섯명의 주민이 돗자리를 펴두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나마 집보다 거리가 낫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답답함은 한층 더했다. 대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양 옆으로 1~2m 간격으로 여닫이문들이 붙어 있었다. 가구당 하나씩만 허락된 문을 여니 어른 한 명이 겨우 몸을 누일 만한 공간이 나왔다. 그 옆으로는 옷이며 이불, TV와 밥솥 등 온갖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한 데 쌓여 있었다. 에어컨은커녕 창문이라도 있으면 감지덕지, 선풍기도 사치였다.

초라한 살림살이가 한 눈에 들여다보여도 문을 활짝 열어둔 가구가 꽤 많았다. 한 주민은 “더우면 다들 문 열어놓고 잔다”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쪽방촌 주민들은 더위가 시작되면 서울역 인근으로 피서를 간다. 서울역파출소에 근무하는 장준기 주임은 “이른바 반숙을 하는 분들이 있다. 낮에는 서울역 근처 지원센터에서 잠을 자거나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여름이면 무엇보다 부족한 게 잠이다. 선풍기 틀고 문을 열어둬도 방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곳 쪽방촌에 거주하는 김모(53) 씨는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여름이면 두 시간도 채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그의 방은 그나마 창문이라도 달렸지만 바람은 좀체 통하지 않는다. 창이 있고 비교적 넓은 이 방은 한 달에 25만원으로 다른 방보다 비싼 편이라고 장 주임은 귀뜸했다.

김 씨는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여름에는 제발 에어컨 한 대 있었으면 싶다”고 했다. 김 씨의 말을 들은 한 이웃은 “에어컨 달면 전기세는 어떻게 감당하려고…”라며 김 씨에게 웃으며 핀잔을 줬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용산구 후암로 57번길로 접어들자 마을 주민 대여섯 명이 그늘 아래 옹기 종기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남대문로5가동의 한 쪽방.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냉장고와 빨래, 온갖 잡동사니가 모여 있어 성인 한 명이 생활하기에도 버겁다.

주민들은 더위보다 장마가 두렵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가 오면 방 안에 세숫대야를 받쳐 놓고 살아야 하는 복고적(?) 풍경은 이 곳에서 낯설지 않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안모(53) 씨는 “물 떨어진다고 동사무소랑 구청에 얘기해 봤는데 건물주랑 얘기해 보라는 말뿐이었다”면서 “건물주 얼굴은 본 적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안 씨의 방 벽면 곳곳에는 곰팡이 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래도 우리는 단합이 잘 돼서 장마철이면 비 안 새는 곳으로 옮겨 함께 보낸다”며 말했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씨는 “해 지는 방향 반대로, 그늘 따라 자리를 옮기는 게 전부”라며 겸연쩍은 듯 웃었다.

결국 의지할 데라곤 지원센터나 봉사단체의 손길 뿐이다. 남대문지원센터 관계자는 “물이나 쿨매트를 지원하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밤까지 쉴 수 있는 편의시설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KT는 오는 24일 쪽방촌 주민들이 무료로 카페와 샤워실 등을 이용하고 미술 치료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개장할 예쩡이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있다. 동자동에 거주하는 정모(81) 할머니는 “내 방이 규정보다 넓고 부엌도 딸려어 쪽방 주민으로 인정을 안 해준다”고 말했다. 비록 방은 넓다지만 다른 쪽방촌 주민과 하등 다를 게 없는 그의 삶이다.

5급 지체장애인인 그는 “쪽방 주민으로 인정을 못 받으니 의료진이 와도 진료 못 받고, 멀리까지 목욕하러 다녀야 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울상을 지었다. 갓 여름의 문턱을 넘은 쪽방촌 주민들의 표정도 정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smstory@heraldcorp.com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

[헤럴드경제=이지웅ㆍ박혜림 기자]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랐던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동 쪽방촌 앞. 아직 여름은 중턱에 이르지도 못했건만 서있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쪽방촌 인근 영등포역 파출소 앞에 앉아 있던 노숙인 5∼6명도 가슴팍까지 웃옷을 끌어 올려 맨살을 드러냈다. 그래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지 주고받는 대화도 없었다.

오후 2시께, 영등포역 파출소에서 노숙팀장을 맡고 있는 정순태(52) 경위와 함께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쪽방촌 안으로 들어갔다. 길을 따라 걸을수록 거리에 나와 땀을 식히려는 주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하나 같이 “더워서 집에 있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모(64) 씨는 “여름에 선풍기를 틀어놔도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잔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일찍 문을 열여놓고 생활하는 거라고 했다.

한 씨의 동의를 받아 그의 집을 찾았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 안쪽의 1평 남짓한 공간. 한 씨의 방은 찜질방처럼 후텁지근했다. 비좁은 바닥엔 양은냄비와 마트에서 쓰는 녹색바구니 등 각종 집기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엔 1명이 쪼그려 누울 공간만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얼마 전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창 없는 방은 원천적으로 통풍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습기라도 차면 천장과 벽에 곰팡이가 검게 번지는 일이 다반사다. 얼마 안 있으면 장마가 올 것이다.

벽면에 매달려 다 낡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선풍기도 제 임무를 수행하기엔 힘겨워 보였다. 한 씨는 “문을 닫건 열건, 더위를 피할 수 없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목발을 짚고, 불편한 몸을 이끌며 다시 ‘시원한’ 골목으로 나섰다.

이처럼 쪽방촌 주민 대부분은 여름철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절도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남대문로5가동의 한 쪽방. 자그마한 책상 위에 온갖 물건이 쌓여 위태위태하다.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정순태 팀장은 “매일 2∼3시간 단위로 순찰을 나가고 있다”며 “그래도 통장을 도둑맞을까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있어, 파출소 차원에서 통장을 맡아 보관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게 보관하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의 통장만 100개가 훌쩍 넘었다.

땀에 절은 몸을 씻는 일도 쪽방촌에선 쉽잖은 문제다. 간단히 씻을 수 있는 공용화장실이 군데군데 있긴 하지만, 화장실 하나당 8∼10가구가 함께 쓰고 있는 실정이다. 샤워를 하려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쪽방촌에서 70m 떨어진 공용샤워실로 가야만 한다.

그나마 1곳 있는 이 공용샤워실마저도 남녀 각각 한 사람씩밖에 들어갈 수 없다. 541세대, 약 600명 정도의 주민이 다 씻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여름철에 쪽방촌 주민들이 자주 씻을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여건 때문이다.

여름엔 먹는 일도 곤혹스럽다. 주민 중 상당수는 집에 냉장고가 없다. 쪽방의 월세값은 한 달에 20∼25만원. 이 안에 전기세와 수도세 등이 다 포함된 탓에, 일부 집주인은 냉장고도 함부로 들여놓지 못하게 막는다. 작은 냉장고 하나도 들여놓을 공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음식이 쉬 상하는 여름철, 집밥을 해먹는 풍경은 쪽방촌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배모(61) 씨는 “냉장고가 있어야 뭘 두고 먹든 말든 하는데, 없으니까 매번 요셉의원이나 사랑의 열매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는 옹달샘 상담보호센터는 지난 16일부터 폭염 대비에 들어갔다.

권경윤(39) 팀장은 “근무자 1명과 직원 1명이 하루 3번 쪽방촌을 돌면서 주민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쪽방촌에서는 열사병이나 일사병에 걸리는 환자보다 더운 방을 나와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래 노출돼 화상을 입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지난해랑 마찬가지로 올해도 얼린 생수랑 차가운 물수건을 드려야죠.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으면 조금이나마 열감(熱感)이 내려가거든요.”

얼굴의 열기를 머금어 후끈해진 물수건은 샤워를 못한 주민들의 몸에 물기를 축이는 소중한 임시방편으로 쓰인다고 한다.

쪽방촌을 빠져나오는 길. 구멍가게 주인 한 분이 얼굴에 흥건한 땀을 연신 손으로 훔쳐냈다. “날씨가 너무 더워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내뱉듯이 말했다. “날씨가 덥긴 뭐가 덥나. 연탄값 안 들어가서 좋은 거지 뭐.” 쪽방촌에서 40년을 거주했다는 그는 “여름이라 딱 하나 좋은 점은, 이것저것 돈 들어갈 일 없다는 거야”라고 하면서, 쓰게 웃었다.

쪽방촌에 여름이 오고 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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