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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월드컵] ‘응답하라 1998’ 눈물의 벨기에戰
엔터테인먼트| 2014-06-25 11:17
프랑스월드컵 16강 조기 탈락 불구…최선다한 대표팀에 국민들 박수갈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마지막경기.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심판의 호각소리가 들린다. 벨기에의 스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주저앉는다. 결과는 1-1 무승부. 붉은악마 응원단은 마치 한국이 승리한 듯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전 경기에서 참패하며 들끓었던 비난과 손가락질은 마법처럼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 경기는 축구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1998 프랑스월드컵 대 벨기에전이다.

16년이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한국은 다시 벨기에와 만난다. 얄궂은 운명이다. 알제리에게 철저히 무너진 태극전사들은 전세계 외신에 의해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받았고 국민 여론은 이보다 더 나쁠수가 없는 상황. 당시 동갑내기 선수로 맞붙었던 한국의 홍명보(45)와 벨기에의 마르크 빌모츠(45)는 조국의 감독이 되어 재회한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은 무승부였음에도 많은 이들에게 ‘최고의 경기’로 회자된다. 당시 한국 대표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조별리그 1차전은 멕시코에게 1-3패배, 2차전은 히딩크가 이끄는 네덜란드에게 0-5 로 대패하며 차범근 감독이 중도 경질됐다. 세계무대만 서면 작아지는 선수들에게 국민들은 부정적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맞이한 벨기에전,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였던 태극전사들은 투혼을 불사르며 몸을 날렸다. 벨기에가 전반 초반부터 우리를 두들겨 선제골을 넣었지만, 대표팀 주장 유상철(43)이 후반 26분 동점골을 기록하며 균형을 맞췄다. 대승을 거둬야 16강 진출을 노려볼 수 있던 벨기에는 이 동점골 이후 더욱 격렬하게 우리를 몰아 붙였다.

당시 23세의 수비수 이상헌(39)은 벨기에 선수들의 발길질에 얼굴이 차이고 종아리에 쥐가 나 교체됐다. 현재 대표팀 코치인 김태영(44)은 당시 후반 27분 공을 경합하다 쓰러졌다. 그의 오른 무릎엔 이미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리에 쥐가 나 고통을 호소했지만 더 이상 교체할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헤딩 경합을 하다 벨기에 선수와 부딪히며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얼굴엔 피가 흘러내렸지만 선수는 붕대를 씌워주는 의무진을 향해 오히려 “빨리 해달라”며 소리치며 울음섞인 절규를 했다. 흰 붕대를 머리에 감고 그라운드로 들어온 그는 27세의 수비수 이임생(43)이었다. 이 모습은 전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후반 막판 벨기에의 총공세가 펼쳐졌다. 김태영, 이임생, 유상철 선수는 차례로 쓰러지며 벨기에의 슈팅을 막았다. 이들은 발이 아니라 등, 배, 머리 등 온몸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강력한 슈팅을 막아냈다. 발로는 한발 늦으니 몸을 날리는 모습에 보는 이들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경기가 끝나자 비난 여론은 쏙 들어갔다. 선수들이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IMF위기’로 시름하던 국민들은 이 한 경기로 모든 것을 용서했다.

이번엔 벨기에가 더욱 강해져 16강을 확정했고 우리도 16강의 실낱같은 희망이 남았다. 그 희망이 감동과 미소로 기억되면 된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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