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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랩]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 시진핑
헤럴드경제| 2014-07-03 11:15
[베이징=박영서 특파원]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방한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종종 하는 말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낮춰 중국의 1인자가 된 시진핑, ‘마오쩌둥(毛澤東)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한 리더쉽을 발휘하면서 14억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다.

그는 1953년 베이징에서 혁명원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1962년 부친이 반당분자로 몰려 실각당하고 문화대혁명의 광풍까지 몰아치면서 그의 고난은 시작됐다. 16세 소년 시진핑은 1969년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량자허(梁家河)촌으로 하방됐다. 불과 3개월을 못 버티고 탈출했지만 백부와 백모의 설득으로 다시 량자허로 돌아갔다. 이때부터 시진핑은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21세 때까지 약 7년간 그 곳에서 농민들의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시 주석은 “그 시절 벼룩, 이, 음식, 사상, 노동의 관문을 통과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75년 칭화(靑華)대에 입학할 수 있는 2명이 옌안에 할당됐고 시진핑에게 한 자리가 돌아가면서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1979년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에 배치돼 당시 겅뱌오(耿彪) 부총리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지방으로 내려가 경험을 쌓겠다고 결정, 1982년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1985년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부시장으로 임명되면서 17년간의 푸젠성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푸젠성에서 개혁·개방정책을 적극 추진했고 부패척결에도 성공을 거둬 중앙 지도부의 주목을 받게된다. 2007년 3월 당시 터진 천량위(陳良宇) 비리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상하이시 서기로 임명된 것은 인생의 큰 전기였다. 천량위 비위사건을 무난히 수습해 주요 권력파벌인 상하이방은 물론 공청단파 양쪽에서 신의있고 능력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된다. 상하이 서기로 임명된지 7개월 후인 2007년 제17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차기 지도자로 낙점됐다.

그는 과묵한 성격과 신중한 언행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타협과 조정에도 능하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10번이나 거절당했지만 끝내 공산당에 입당한 것에서 보듯 강한 집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마침내 그는 2013년 3월 국가주석에 올라 당, 정, 군 3권을 틀어쥐면서 1인 지배체제를 완성해나가고 있다. 

py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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