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대통령의 휴가
뉴스종합| 2014-07-30 09:46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바캉스(vacance)의 어원은 ‘텅 비우다’는 뜻의 바카씨오(vacatio)라는 라틴어입니다. 프랑스에 들어가 바캉스가 됐고,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제프리 초서의 운문설화집 ‘켄터베리 이야기’, 세익스피어의 비극 ‘햄릿(Hamlet)’에 휴가(vacation)로 쓰이면서 일반화됐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휴가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이들이 프랑스인들입니다. 1년 꼬박 돈 벌어 한 달 휴가 가는 재미로 산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휴가 떠나기 전에 가족보다 연인보다 더 애지중지하던 개, 고양이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기 일쑤입니다. 이를 보다 못한 영국인들이 제멋대로인 휴가를 ‘프랑스 휴가’라고 하고, 이에 발끈한 프랑스인들이 형편없는 요리를 ‘영국요리’라고 한다는 군요. 

지난해 취임후 첫 여름휴가를 저도에서 보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그런데 눈치안보고 휴가를 즐기는 이들은 정작 미국인들입니다. 빵 먹듯이 휴가를 쏘다니면서 돈은 언제 벌어 세계 최강 자리를 유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국민 누구나 할 것 없이 노는 데는 일가견 있어 보입니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다 그랬고, 그 중 백미(白眉)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피격에 폭격에 지구촌이 난리 통인데 다음달 16일씩이나 미 동부 단골 휴양지로 가족과 떠난다고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 됐을 무렵에는 새까맣던 머리가 몇 년 새 하얗게 변한 것을 보면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갖는 업무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짐작됩니다. 그래도 그가 늘 만면에 웃음을 머금는 것은 휴가를 앞둔 때문이라는 우스개까지 들립니다.

그를 보면 아무리 바빠도 쉴 땐 쉰다는 자세가 확고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게으르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의 근면성실 근성은 세계가 다 압니다. 놀 때 놀고 일할 땐 확실히 일하는 지도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바캉스 문화가 들어 온 것은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쯤이라고 합니다. 포니승용차를 첫 수출하는 등 ‘무역입국’기치를 내걸고 새마을운동으로 국민모두가 한마음 하나 되어 “잘살아 보세”를 외치던 때입니다. 그 즈음 국민소득 1000달러고지에 우뚝 선 것입니다. 고도성장으로 생활이 윤택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나들이에 서서히 바다건너 세련된 바캉스가 접목된 겁니다. 

두 딸과 자유롭게 휴가를 즐기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삼복더위에 본격적인 바캉스 계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28일부터 닷새 동안 휴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휴가 내내 청와대 경내에만 머물겠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아직 덜 수습된 데다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이 적지 않은 때문일 겁니다. 지난해 취임 후 첫 여름휴가를 경남 거제에 있는 ‘저도’에서 보낸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 곳 모래밭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쓰며 10대 소녀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여름휴가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힘들고 길었던 시간들...휴가를 떠나기에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이라는 글로 관내 휴가에 대한 소회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는 힘들었던 시간 동안 밀린 많은 일들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심경도 토로했습니다. 말이 휴가지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참모들도 줄줄이 대기상태인 모양입니다.

힘들수록 여유가 필요합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인데 염천(炎天)아래 청와대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모습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휴가는 국정의 윤활유나 다름없습니다. ‘미국답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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