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문화
[데이터랩] 체포된 민주주의…경찰국가 미국의 민낯
뉴스종합| 2014-08-20 11:23
치안 유지 위해 경찰권한 대폭 확대…무고한 시민들 피해만 양산 역효과
체포기록 취업 · 교육 불이익 ‘주홍글씨’



미국이 ‘범죄와의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다. 사회 안녕과 치안 개선을 위해 경찰 권한을 대폭 확대했지만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만 커지는 등 되려 독(毒)이 됐다는 지적이다.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비무장 상태의 10대 흑인 청년이 백인 경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은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공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경찰에 맞서고 있다.

이어 사건 발생 10일 만인 19일(현지시간) 세인트루이스 시위 현장 인근에서 23세 청년이 또다시 경찰의 총격에 숨졌다. 이 청년이 경찰 명령에 불응하고 칼을 휘둘러 발포할 수밖에 없었단 경찰 해명과 달리, 당시 희생자가 ‘쏘지 말라’고 거듭 말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 사건이 국민적 분노의 기폭제로 작용할지 주목되고 있다.

▶경찰권 강화→체포 남발(?)=오늘날 미국 경찰의 힘이 이처럼 강력해진 것은 1990년대 도입한 ‘제로똘레랑스’(무관용) 정책 덕분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중범죄가 잇따르자 사법경찰권을 강화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사소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경관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으며 사법당국에 막대한 지원금을 제공했다.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경찰, 교정소, 법원 등 각 주정부와 지자체의 사법 집행기관들에 지출된 예산은 2011년 2120억달러(약 215조7100억원)로, 1992년 1280억달러, 2001년 1790억달러에서 크게 증가했다. 지자체 소속 경찰관 수도 1991년 53만1706명에서 64만6213명으로 불어났다.

경찰권 강화로 인해 체포 건수도 따라 늘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사법당국의 체포 건수는 2억5000만건에 달했다. 또 현재 FBI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이는 7770만명에 이른다. 미국 성인 3명 중 1명은 FBI에 범죄자로 기록돼있는 셈이다.

▶인종차별, 경관 오판…체포과정 ‘잡음’=경찰권 강화는 치안 유지라는 순기능뿐 아니라 각종 역기능을 수반했다. 뚜렷한 혐의 없이 체포를 남발하는 등 경찰권만 비대해졌다는 비판이다.

남가주대 연구진들이 무작위로 선정한 20대 73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3세가 될 때까지 최소 1번 체포된 경험이 있는 남성은 전체의 40%였다. 그 중 25% 이상은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으며, 47%는 무죄 판결을 받아 대다수가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별로 체포 경험의 격차도 났다. 같은 조사에서 23세 이전 체포된 적 있는 흑인 남성은 49%, 히스패닉도 44%에 달했지만, 백인은 38%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체포 과정에서 경찰의 정당방위에 의한 사망자도 증가 추세다. 워싱턴포스트(WP) 분석에 따르면 1991년~2012년 폭력범죄는 191만건에서 121만건으로 감소한 반면, 경찰 정당방위에 의한 사망자 수는 1991년 폭력범죄 10만건 당 1.92건에서 2012년 3.38건으로 증가했다.

▶소득ㆍ취업ㆍ교육 ‘3低’…평생 불이익=문제는 죄의 유무가 아니라 체포기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에게 평생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낮은 교육수준 때문에 취업 장벽에 가로막히고 벌이가 적은 미숙련 일자리에 내몰려 빈곤의 늪에 빠져든다.

저널이 남가주대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23세 이전 체포된 적 있지만 무죄가 확정된 남성이 25세에 벌어들인 중간소득은 2만3000달러(약 2340만원)로 일반 남성(2만5000달러)에 비해 2000달러 적었다. 유죄 판결까지 받은 경우는 2만달러(약 2035만원)로 제일 적었다.

빈곤선 미만 가계소득에 의존해 사는 경우도 체포기록이 있는 남성(무죄판결자 21%ㆍ유죄판결자 26%)이 그렇지 않은 남성(13%)보다 많았다.

반면 학사 이상 학위 소지자 비율은 일반 남성이 37%로, 체포기록이 있는 남성(무죄 14%ㆍ유죄 10%)에 비해 3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잭 레빈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체포 급증 현상의 충격은 재앙적”이라면서 “낙인찍힌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수십년 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체포기록도 문제다. FBI의 체포기록은 혐의 확정과 상관없이 지방 재판기관에서 삭제를 요청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유지된다. 경관의 실수로 체포됐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체포 경험이 있는 이들의 재기를 가로막는 ‘주홍글씨’가 되는 것이다.

설상가상 체포기록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정보업체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업이나 학교가 지원자의 범죄이력 등 과거 확인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 착안, 공개 접근이 가능한 체포기록들을 모아 파는 것이다. 경찰이 체포한 용의자의 상반신을 촬영한 ‘머그샷’부터 혐의 내용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어 사생활과 인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때문에 구글은 지난해 개인 이름을 검색할 경우 ‘머그샷’ 사이트가 덜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수정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들 업체에 등록된 개인 체포기록을 삭제하려면 2000달러(약 203만원) 가량의 수수료까지 내야하는 실정이어서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강승연 기자/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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