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살만들 하십니까
뉴스종합| 2014-09-08 08:37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통계 뉴스 하나가 추석을 마냥 기쁘게만 보낼 수 없게 합니다. ‘끔찍한 익숙함’이 돼 버린 한국의 자살률과 관련한 통계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4일(현지시각) 지난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인 10만명당 28.9명이 자살해 자살률 세계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1위는 남미 가이아나(44.2명), 3위는 북한(38.5명)이었습니다.

한국의 자살 증가율은 세계에서 2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000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한국은 109.4%나 자살률이 증가했습니다. 1위를 기록한 키프로스는 269.8%가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2위냐 3위냐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타국을 압도할 수준의 1위 자리를 수년째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사회적 약자 계층인 청소년의 자살률(10만명당 29.1명)과 65세이상 노년층의 자살률(10만명당 80명 수준)도 OECD 국가 최고 수준입니다.

또다른 슬픈 소식도 최근 전해졌죠. 출산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겁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2013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43만6500명으로 2012년 보다 9.9% 줄어들었습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조출생률)는 8.6명이었습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40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출산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뉴스꺼리도 되지 못합니다. 2011년 기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7명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꼴찌입니다. 출산률이 떨어지면서 산부인과는 줄줄이 폐업중입니다. 의료정책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산부인과의 폐업률은 223.3%였습니다. 산부인과 1곳이 문을 열 때 2.3곳이 문을 닫는다는 얘기입니다.

두가지 서로다른 슬픈 통계가 가리키는 지점은 그러나 하나입니다. 바로 한국이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해보겠습니다.

최근 끔찍한 구타로 결국 사망에 이른 윤 일병 사태가 일어나자 ‘병력 자원’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관심병사가 크게 늘어난 이유가 신검 등의 과정에서 걸려져야 할 인원들이 ‘병력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제대로 걸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여집니다. 여기서 목에 콱 걸리는 단어가 바로 ‘자원’입니다. 사람이 자원인 세상.

한 때 한국의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였습니다. 각 회사들의 인사 관리팀이 HR팀(human resources) 즉 인간 자원을 관리하는 팀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바다를 ‘자원의 보고’라 배웠기에, 사람 역시 자원의 한 종류로 취급하는 이런 단어들에 거부감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조금은 거리가 있을 지 모르는 이들 단어들이 바로 한국을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도 듭니다.

바로 사람 또는 인간의 가치를 ‘자원’으로 치환하는데 익숙한 현재의 한국 사람들의 기본 시각 틀거리(프레임)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 핵심엔 돈이 있죠. 우리는 ‘돈이 근본’이란 의미의 무시무시한 단어인 ‘자본주의(資本主義)’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안타깝게도 당연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출산율이 극도로 떨어진 것에 대한 이해가 쉽게 되기도 합니다. 처절하게 계산적으로 들어가보죠. 내가 낳을 아이가 가질 ‘사회적 의미값’이 일개 자원으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자녀 양육을 위해 투입된 부모의 희생은 제 가격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죠. 제 값을 받지 못할 상품은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 ‘효율’은 자본주의가 달성해야 할 지상과제입니다.

더군다나 자식을 생산하는 데 있어 투여될 무궁한 노력을 감안한다면 ‘인풋 대비 아웃풋’은 너무 적습니다. 견적 안나오는 장사에 뛰어든 사람은 두가지 입니다. 자원이 무지하게 많거나, 바보거나. 한 때 출산률이 낮은 이유를 개인주의 풍조의 만연이라거나 지나치게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세태라고 비난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리성에 기반한 계산, 수치화에 능숙하게 자식들을 길러낸 현 기성세대들의 작품들이 바로 젊은이들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자원 부족’이 안타까운 사회 어르신들의 푸념일 뿐입니다.

세월호 사고도 따지고 보면 ‘돈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만들어 낸 참극입니다. 무리한 증축과 싼값에 고용할 수 있는 허수아비 선장, 규제 철폐란 이름으로 행해진 선령제한 완화 등은 결국 ‘돈을 많이 벌자’는 것이 핵심 목표였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보상금 더 받으려는 것 아니냐’는 질타를 보내는 시각도 실은 본인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행동들입니다.

나름 일관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일한 시각으로, 타인들을 대하기 마련입니다. 유족을 향한 ‘돈을 바라고 그러는 거지?’라는 비판에 그럴싸함을 느꼈다면, 당신들의 자식이 죽었을 때에도 ‘돈’을 바랄 개연성이 높단 의미입니다. 야당에선 ‘조직적 유포가 문제’라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광범한 카톡 유포는 해당 메시지를 받아든 이들의 개별 공감 없이는 성립키 힘든 것이기도 합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교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 사람의 연봉으로, 그 사람의 시장 가치로, 벌 수 있는 현금력 등으로 평가하는 우리들의 익숙함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라고 하면 너무 멉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친구, 동지, 동료, 상사, 후배, 선배를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평가하느냐 그것이 한국 변화의 첫 시작 아닐까 제안해봅니다. 메리 추석~

hong@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