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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트라우마와의 전쟁…침술에 보톡스까지
뉴스종합| 2014-09-15 10:41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베트남전, 이라크전, 9ㆍ11 테러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치른 전쟁은 공식적으론 끝이 났지만 참전 군인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전쟁 참상의 기억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치료방법으론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참전 군인들을 위해 최근엔 침술, 보톡스 등 다양한 치료 대안까지 등장했다.

▶참전용사 한해 50만명 트라우마 치료=전쟁에서 돌아온 참전 미군들을 괴롭히는 것은 부상이나 신체 장애뿐만이 아니다. 정신에 남는 상처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더 무섭고 지독하다. 심각한 신체ㆍ정신적 충격을 겪은 뒤 반복적으로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고통을 당하는 PTSD는 방치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술이나 마약에 빠질 수 있어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트리스탄 벨 일병이 아프가니스탄 해군 진료소에서 침술을 받고 있다. 벨 일병은 도로변에서 발생한 폭탄 공격으로 뇌진탕을 일으킨 뒤, 두통 등 PTSD 증세를 겪고 있다. [자료=WSJ]


그러나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참전 미군은 갈수록 증가 추세여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자 아시아판을 통해 지적했다.

실제 독립 정부자문기관인 미국 연방의학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50만명의 참전 군인들이 외래 PTSD 치료를 위해 연간 최소 2차례 보훈부(VA)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해 VA 방문 환자의 9%를 차지하는 것으로, 2003년(4%)에 비해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결과다.

여기에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미군 190만명 중 20%에 이르는 수가 향후 PTSD가 발병할 것으로 예상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침술ㆍ보톡스ㆍ마리화나…대안치료 부상=그렇다고 해서 미국 정부가 참전 미군의 트라우마 치료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VA와 국방부가 지난 2012년 PTSD 치료를 위해 지출한 예산은 각각 30억달러(약 3조1026억원), 2억9400만달러(약 3040억5500만원)에 달한다.

다만 PTSD 환자 상당수 중에는 일반적인 약물치료나 대화를 통한 심리치료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최근에는 승마, 보톡스 등 다양한 대안 치료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종류별로 크게 ▷약물(보톡스, 마리화나 등) ▷치료(침술, 최면술, 고압산소치료, 광선치료 등) ▷신체활동(스쿠버다이빙, 승마, 춤, 요가, 태극권 등) ▷식이요법(블루베리 추출물, 생선기름) 등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 VA는 이 가운데 침술과 보톡스를 각각 불면증과 두통에 대한 치료법으로 승인, 대안 치료의 가능성을 밝혔다. VA는 대안 치료 연구에 지난해 1800만달러(약 186억원)를 쏟아부을 정도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VA 산하 국립 PTSD센터에 따르면 참전 군인의 절반 가량이 대안 치료를 이용했을 정도여서, 향후 대안 치료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7~2008년 이라크에 파병됐다가 로켓포 공격으로 부상을 입어 귀국했다는 안젤로 나티치오니(37) 씨도 약물이나 심리치료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다. 그는 “요즘에도 이라크의 악몽에 쫓기다 이따금 새벽 3시에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날 때가 있다”면서 대신 “당시 전우들과 함께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가 유일하게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치료대안 인정하라” 정부 상대 법적 움직임=참전 군인의 대안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 차원에서 연구ㆍ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VAㆍ국방부 등 유관부서와 의회에 로비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저널은 전했다.

티모시 라이언 상원의원(민주ㆍ오하이오)과 리치 누전트 상원의원(공화ㆍ플로리다)은 최근 전국에 대안 의료시설 10곳을 신설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곳에선 기존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참전 군인들을 대상으로 대안 치료법이나 보충 치료를 실험할 수 있도록 했다. 향후 이 법안이 하원에 상정되면 관련 논의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밖에 웨이크포레스트대는 국방부 특수전사령부(SOC)를 통해 10만7000달러(약 1억1066만원)의 기금을 받아 참전 미군 PTSD 환자에 대한 대대적 연구에 돌입했다. 올 가을부터 10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대안 치료법을 실험할 예정이다.

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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