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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폭행당한 병사에게 “너도 빨간줄 그어진다”며 합의 종용…합의하자 “민사로 해결하라”
뉴스종합| 2014-09-22 08:51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선임병이 후임병을 폭행한 상황에서 군이 후임병 측에 “빨리 합의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해도 헌병대에 끌려가 빨간줄이 그어질 수 있다”며 사실상 합의를 강요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군은 “합의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후임병 가족은 “군이 사건을 조용히 덮으려고 했던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2일 국방부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10일 오전 11께 육군 제3공수특전여단 수송중대 생활관에서 박 모(22) 병장이 야간 근무를 마치고 누워 있던 정모(22) 상병에게 커튼을 치라고 지시했으나 “직접 쳐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정 상병의 얼굴 등을 수차례 폭행, 정 상병은 안와골절 진단을 받아 수술 후 현재 국군수도병원(분당)에 입원 중이다.

정 상병 가족은 군이 합의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정 상병 어머니 윤모(54) 씨는 “부대에서 사건 다음날(7월 11일) 박 병장의 부모와 나를 불러 ‘정 상병이 폭행의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14일까지 합의하지 않으면 헌병대로 잡혀가 빨간줄이 그어질 것’이라며 합의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도 끌려간다는 말에 겁이 나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군은 7월 15일 헌병대 수사를 통해 박 병장을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확인하고 군 검찰로 사건을 송치했다. 군 검찰은 정 상병이 박 병장의 처벌을 원치 않았고, 가혹행위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 장난을 치다 감정이 상해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며, 양측이 합의했다는 점 등을 들어 8월 12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은 정 상병의 부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며 다시 불거졌다.

정 상병은 CT 판독 결과 오른쪽 눈 뒤 뼈 2개 탈출(안와골절) 진단을 받았다. 8월 6일 윤 씨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부대에 수술을 받기 위한 휴가를 보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군은 차일피일 미뤘다. 윤 씨는 “중대장이 약속한 휴가 일정을 다른 지휘관이 번복하는 등 엉터리로 일관하다 부상 발생 한달 보름 뒤인 8월 26일에야 아들이 뒤늦게 수술을 받았다”며 “수술이 늦는 바람에 사물이 2개로 보이고 눈을 잘 못 뜨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군에 따르면 박 병장은 이달 16일 징계위원회를 통해 영창 5일 처분을 받았다. 정 상병의 가족은 정 상병이 눈 수술 후 후유증을 겪지 않도록 여의도 소재 병원으로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게끔 지금보다 자유로운 외출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군은 “현재 입원 중인 국군수도병원에서 관리 가능하며 안와골절이 이번 폭행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 상병 가족은 “국군수도병원은 안압 체크 정도만 하는 수준”이라며 “2008년 정 상병이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군은 이번 안와골절은 폭행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발뺌하지만, 그것은 의료진의 진단을 왜곡 해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은 합의를 종용한 사실도 없고, 사건은 종결됐다”면서 “이제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민사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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