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 (이응준 지음, 문학동네) |
소설가 이응준(44)의 소설집 ‘약혼’이 최근 쇄를 달리해 출간됐다. 지난 2006년, 작가가 36세 때 펴냈던 1쇄를 개정한 것이다. 관계에 대한 회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삶의 비극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30대 젊은 작가의 사유는 몇 년의 세월을 견뎌내고서도, 더욱 단단해진 고갱이를 드러낸다. 작가의 말처럼 출간 당시 독자들의 외면으로 “내가 작가라는 게 싫어질만큼 큰 고통”이었고, “제 작가를 따라 조용히 잊혀졌던“ 이 소설집을 다시 펴낸 이유이리라.
황송할만큼의 상대가 ‘나’에게 사랑고백을 한 뒤 일주일만에 자살한 사건과 존경하던 스승의 죽음을 맞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내 어둠에서 싹튼 것’, 어린 시절 중학생 사촌형이 광견병에 걸려 죽은 것을 지켜본 친구와 조카 두 명을 빙판 사고로 잃은 ‘나’와, 육손이로 태어나 평생 매끄러운 다섯손가락을 동경하던 여인이 등장하는 ‘약혼’, 자살한 아내의 보상금으로 살아가는 남자와 옛 연인을 다시 만난 정수기판매원 ‘나’를 그린 ‘네가 계단에 서서 나를 부를 때’ 등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현상’으로부터 비약해 ‘통찰’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가 때로 무모하리만큼 관념적이며 선언적인 구절을 빚어내지만, 그것을 상쇄할만큼의 엄격한 문장과 치열한 사유가 힘을 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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