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문화
장어ㆍ고래 씨말리는 日 식문화 속사정은?
뉴스종합| 2014-09-29 11:13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장어와 고래.’ 일본 식탁의 ‘문제적’ 물고기들이다. 일본은 전세계 장어소비의 70~80%를 차지하는 ‘장어소비 대국’이다. 

지난 6월 일본장어가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되면서 일본인들의 무분별한 장어 남획이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고래잡이는 세계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의 남극해 포경 금지에도 아랑곳 않고 고래잡이를 고집하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농림수산상은 “호주인은 캥거루 고기를 먹고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다”며 고래잡이를 옹호해 공분을 샀다.
 
글로벌 해양 생태계에서 장어와 고래의 씨를 말리고 있는 일본의 식문화를 짚어봤다.

▶‘영험한 물고기’ 장어=일본인에게 장어는 예부터 신성한 영어(靈漁)로 숭배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어를 신이 보낸 사신으로 떠받들고, 민화에서는 장어가 스님으로 변해 인간의 과도한 살생을 경고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본에서 장어를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세기 야요이 시대로 알려졌다. 일본 식문화사 전문 고쿠시칸대학의 하라다 노부오 교수는 “장어는 논이 만들어진 기원전 3세기 야요이 시대부터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萬葉集)에도 등장해 일본인의 생활에 뿌리깊게 자리잡아 왔다”고 말했다.

우리의 복날과 같이 장어 먹는 날의 전통이 생긴 것은 1700년대 에도시대다. 7월 29일 장어 먹는 날인 ‘도요오노 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는 달력에 소의 날에 해당하는 축(丑)일에 우(う)의 글자가 붙는 것을 먹는 사람은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에서 따온 것으로 니혼우나기(일본장어)가 보양식의 대명사가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게재한 일본장어 멸종위기종 지정 그래픽과 어획량 추이.[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일본장어의 속사정=일본장어는 세계 장어 19개 종중 하나다. 태평양 괌 인근의 마리아나 해구 근처에서 산란해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아시아로 넘어온다. 하천과 호수늪지에서 성장한 후 괌 주변 근해로 돌아가 다시 산란한다.

일본장어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지난 6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면서다. IUCN은 일본장어를 레드리스트에 포함시키고 “3등급 멸종 위기 종(種)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가까운 장래에 야생에서 멸종할 위험성이 높은 종(1B류)”으로 판정했다.

멸종 위기종에 지정된 이유로는 ‘서식지 환경 악화와 과도한 포획, 바다 이동경로 장애, 오염, 해류 변화’ 등이 꼽혔다.

실제로 일본장어는 지난 30년 새 50% 이상 줄었다. 2010년부터 장어 치어(稚魚ㆍ부화된지 얼마 안된 어린 물고기) 의 양이 현저히 줄기 시작해 2012년에는 장어 값이 폭등하기도 했다. 

▶100엔샵에서도 장어판매(?)=장어가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에 대량 소비되게 된 것은 본격적인 양식기술이 정착한 1980년대 이후 일이다. 1990년대에는 중국과 대만에서 양식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유통경로도 구축됐다.

수퍼마켓에 구이판매 증가하고 외식 체인이나 편의점이 500엔 이하 ‘우나기 덮밥’을 팔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심지어 100엔샵에서도 장어구이가 판매되기도 했다.

이러한 소비저변 확대는 국내외 장어 남획과 사재기로 이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2년 12월~2013년 5월까지 일본에서 장어의 치어 어획량 13t 중 60~70%가 홍콩에서 수입됐다.

문제는 홍콩은 치어를 잡지 않는 지역으로, 중국과 대만에서 포획된 치어가 금수를 피해 홍콩을 경유해 일본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불투명한 치어의 거래로 일시적으로 양식장에 들어갈 치어의 양이 4배 증가했다. 이는 최근 장어가격이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상승하지 않는 요인이 됐다.

여기에는 유럽산 장어도 한몫했다. 유럽산 장어는 1990년대 중국으로 수출됐고, 중국에서 키워진 성어는 일본으로 재수출되는 공급망이 구축됐다.

이후 유럽은 서식지 치어 수량 격감을 이유로 2010년 장어 치어 수출을 금지했지만 모로코와 튀니지를 통해 장어 밀수는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내 대형마트와 도시락 업체에 유통되는 장어의 DNA를 분석한 결과, 스키야와 요시노야 등 유명 덮밥 체인 8개사가 취급하는 9개 제품의 원료가 유럽산 장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장어 식문화 사수 안간힘=장어가 멸종위기종에 지정되자 일본 식탁은 비상에 걸렸다. 일본 관련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일본의 장어 식문화가 사라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일본 내에서는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장어는 아직까지 알 단계에서부터 키우는 ‘완전양식’은 실현되지 않고 있어 중국이나 대만 등에서 수입한 양(1만8258t)이 국내산(1만4334t) 보다 많다.

국제사회의 노력도 병행됐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은 멸종 위기에 놓인 일본장어의 남획방지를 위해 양식장에 푸는 치어의 양을 20% 줄이기로 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장어의 출하량이 감소해 장어덮밥이나 구이의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교도통신은 전망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장어 생태를 지키면서 식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통과 소비를 억제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닛케이는 “옛날처럼 일본장어가 명절에 먹는 고급 음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자원확보와 식문화를 양립시키는 현실적인 대안일지 모른다”고 전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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