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능란한 문장으로 보여주는 명쾌한 사유, 김영하 산문집 ‘보다’
라이프| 2014-09-29 17:55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요리 조리 피하지 않으면 짧은 한 문장에 조차 여기 저기 도사린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기 쉽듯, 에세이 혹은 산문집이라 이름붙은 글도 길을 잘못 들어 정신 차리고 보면 도통 왜, 어디에 왔는지 모르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국 하나마나 한 말을 번지르르한 수사로 눈속임하거나, 궁리가 지나쳐 자가당착에 빠지거나, 욕심이 허영에 달해 알아 듣기 힘든 사변의 세계로 비약해 가는 수가 적지 않다.

그런데 소설가 김영하의 최근간 산문집 ‘보다’(문학동네)는 당대의 독자들과 호흡하는 ‘산문의 도’가 아주 모범적인 예라 할 것이다. 주제가 명쾌하고, 문장은 능란하며, 저자의 목소리는 선명하다. 그러면서도 강요하거나 억지부리는 법 없다. 소재는 누구나 쉽게 만나고 접할 수 있는 것이되, 그것을 보는 시각과 풀어낸 말은 예리하면서도 새롭다. 남다른 사유이되 어렵지 않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고, 각 부에는 5~7개의 짧은 에세이가 수록돼 있다. 1부는 굳이 말하자면 불평등을 열쇠말로 한 글들인데, 짐작하듯 ‘양극화’에 대한 뻔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김영하의 사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생존카드’, TV 드라마 ‘직장의 신’, 영화 ‘설국열차’, 로버트 기요사키의 처세술 책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등을소재삼아 시간과 여행, 숙련노동에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해 말한다. 특히 영화 ‘신세계’에서 극중 최민식과 황정민의 캐릭터를 가난한 아빠와 부자 아빠로 해석한 대목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2~4부에서도 대중문화의 다양한 작품들과 소설, 작가들을 인용하며 일상과 예술, 지역, 세계에 대한 단상들을 펼쳐놓는다. 문득 문득 내 보이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내력도, 김영하를 잘 아는 독자나 아직 낯선 이들에게나 모두 흥미로울만 하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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