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경제붐 꺼진 남미 ‘핑크타이드’ 역류하나
뉴스종합| 2014-09-30 10:55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남미 최대 강국 브라질에서 10월 5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 승리 여부에 남미 정치지형이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간의 경제호황에서 맥없이 추락하는 남미 3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핑크 타이드(분홍물결ㆍ선거 승리로 잇따라 좌파정권 출범)’도 역류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이들 세 나라를 남미의 취약 경제 3개국로 지목하면서 “지난 10년에 걸친 남미의 호황기가 끝나가는 명백한 징후”라며 “이는 남미지역에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는 5일 브라질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원자재값 약세로 ‘핑크 타이드’ 위기=10년 전 남미는 중국발 원자재 가격 상승의 특수를 누렸다. 경제 호황은 좌파 정권에 힘을 실어주며 ‘핑크 타이드’를 일으켰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는 볼리바르 혁명(교육ㆍ복지강조) 세력이 우고 차베스 대통령 재임 14년을 포함해 16년 간 실권을 쥐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부부의 연립 정권은 12년, 브라질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와 호세프 대통령의 노동자당도 12년 장기 집권하고 있다.

이들 좌파정권은 지난 10년간 경제성장 속에 실질임금 상승과 고용 확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는 중산층 확대로 이어져 부의 격차 해소에도 일정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장밋빛 경제 10년 후 현재 상황은 역전했다. 중국 경제는 위축되고 원자재 가격은 하락했다. 이들 국가는 경상수지 적자 등 취약점을 드러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상승은 경상적자 해소에 최대복병이 되고 있다.

FT는 “베네수엘라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이고, 아르헨티나 경제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브라질은 부정부패와 경기침체 속에 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대항마’ 브라질사회당(PSB)의 마리나 시우바 후보.

▶경제붐 꺼지며 디폴트 위기 내몰려=세계 최대 석유매장국이자 4위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는 디폴트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베네수엘라 국가신용 등급을 B-에서 CCC+로 한단계 강등했다. 이는 투자적격등급보다 7단계 낮은 것이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외화보유액 급감이 강등의 원인으로 꼽혔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8월 63.4%를 기록해 살인적 수준을 나타냈다.

남미 3대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는 최근 13년 만에 채무불이행을 두번 선언했다.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40%로 치솟았고 외화보유액은 2011년 526억달러에서 280억달러 수준으로 축소됐다. 그럼에도 페르난데스 정권은 대통령 연임제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개헌을 들고 나왔다. 내년 10월 치러지는 대선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3연임 길을 터주기 위한 것이다. ‘파산국가’의 책임자인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난주 유엔총회에서 “아르헨티나는 국제금융 테러 피해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미 최대 강국 브라질 경제는 기술적 침체(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 빠졌다. 브라질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6% 감소했다. 1분기 GDP도 전분기 대비 0.2% 감소했다. 8월 물가상승률은 6.51%를 기록해 브라질 중앙은행이 정한 목표치(4.5%)와 목표 범위(2.5~6.5%)를 상회했다. 2분기 투자는 전분기 대비 5.3% 줄어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달 초 브라질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저성장과 투자심리 악화, 부채 급증이 주된 요인으로 평가됐다.

반면 현재 남미 경제는 투자를 우선시하는 페루와 콜롬비아가 급부상하고 있다. 페루(좌파)와 콜롬비아(중도우파)는 GDP대비 28%를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아시아에 버금가는 속도라고 FT는 전했다. 

브라질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추이. [출처:FT]

▶브라질 대선에 쏠린 눈=브라질 대선 판세는 초박빙이다. 현직 호세프 대통령(노동자당ㆍPTㆍ66)과 야당 브라질사회당(PSB)의 마리나 시우바(56) 후보의 지지율은 41%로 동률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주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대선 1차 투표(10월5일)에서 기권표와 무효표를 뺀 유효득표율은 호세프 45%, 시우바 31%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됐다. 두 사람이 결선투표(10월26일)에서 만나는 것을 가정한 유효 득표율은 호세프 52%, 시우바 48%로 전망됐다.

FT는 ”호세프 대통령의 국가 통제주의적 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하고 원자재 의존 경제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호세프 대통령의 환율과 에너지 가격 통제는 재계의 비판을 샀고, 월드컵 인프라 예산 낭비와 국영기업 비리사건은 민심을 등돌리게 했다. 호세프의 지지율은 집권 초반 ‘브라질의 대처’로 불리면서 60%를 넘나들었지만 지난해 중반 이후 30%대로 반토막이 났다.

한편 호세프의 대항마 시우바 후보는 30년 환경운동에 몸담은 ‘아마존 여전사’로 평가된다. 그는 중앙은행 자율권 강화 등 친시장주의적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FT는 이번 브라질 대선에서 시우바 후보가 승리하면 남미의 정치지도가 바뀌는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브라질 노동자당은 지난 12년 간 남미의 좌파 국가를 지원해왔지만 시우바가 집권하면 이같은 지원이 줄어들면서 브라질 외교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FT는 “이렇게 되면 남미 정치지형이 바뀌고 다른 지역, 특히 미국과 유럽 등 서방과의 관계변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시우바의 참모진은 이미 미국 및 유럽과의 무역협정을 목표로 하는 한편,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참여하는 보호주의 무역권인 남미공동시장 ‘메르코수르’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시우바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난 10년간 처음으로 중남미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서 야당 후보에 패배하는 것이 된다. 이는 지역경제 감속에 따른 새로운 정치 트렌드를 보여줄 수 있다고 FT는 덧붙였다.

새로운 정치 트렌드란 라틴 아메리카의 700만명에 달하는 ‘푸티부르주아(소자산계층)’의 성향을 말한다. 이들은 연대하기 쉽고, 자신들이 자산계급 혹은 상류계급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부 보조금 보다는 기회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또 다른 요소는 현재 상태에 환멸을 느끼는 세대가 성인이 됐다는 것이다. 남미 인구의 절반 이상은 27세 이하다. 이들은 우파의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만큼이나 좌파의 정실 자본주의에도 의구심을 갖는다.

브라질의 시우바 후보 주요 지지층은 ‘27세 이하 푸티부르주아들’이다. FT는 “계층 상승을 바라는 젊은이들이 ‘희망’과 ‘변화’로 응축된 오바마식 공약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면서도 “이는 남미 경제의 호황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나오는 하나의 형태”라고 분석했다.

/cheo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