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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X파일] “취업하는데 역사가 왜 필요하죠?”
뉴스종합| 2014-10-04 17:00

[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바야흐로 ‘취업 시즌’입니다. 주요 기업의 하반기 공채 전형이 한창입니다. 4일 LG그룹을 시작으로 10월중 대기업 채용 인적성검사가 줄줄이 예정돼있습니다. 

올해 공채 전형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공통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역사’입니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통섭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다양한 노력이 진행됐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역사적 소양 평가입니다. 포스코와 현대차그룹이 인적성검사에서 역사에세이 평가를 진행하고, 업계 최초로 한국사 시험을 도입했던 GS는 올 해부터 역사관 평가를 전 계열사로 확대했습니다. LG·SK그룹은 올 해 처음 인적성검사에 한국사 문항을 도입합니다. 면접에서도 역사적 소양을 볼 수 있는 질문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수년 전만 해도 ‘역사’와 ‘취업’은 어색한 조합이었습니다. 채용 전형에 역사 소양을 평가하는 항목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굳이 찾자면 한국사능력시험 급수를 자격증 기재란에 기입하는 정도였을 겁니다. 

역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부터입니다. 이공계 출신에 대한 기업의 선호도가 커졌는데 ‘차가운 기술자’만 뽑기에는 시대가 원하는 ‘따뜻한 감성’을 채우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여기에 숫자로 점철된 스펙보다는 조직융화 능력과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역사관은 이러한 능력을 평가하는 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채용 시장에서 언제나 ‘을’일 수 밖에 없는 준비생들은 부랴부랴 한국사스터디를 만드는 등 역사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국사자격증은 필수가 된지 오래입니다. 볼멘 소리도 나옵니다. 지난 2월 A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인 B 씨는 “토익 점수보다는 영어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고 해서 생겨난 것인 토익스피킹이다. 또 하나의 토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준비해야 할 과목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지난 4월13일 삼성 직무적성검사(SSAT) 고사장이 마련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에 수험생들이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나오고 있다. <헤럴드경제DB>

또 다른 우려도 있습니다. 역사관에는 개인의 정치적 이념도 포함되기 마련인데 인사담당자나 평가자의 역사관과 다를 경우 불이익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입니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인사담당 고위임원은 기자에게 이렇게 답을 해왔습니다. “이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어야 우리 사회도 돌아가는 것 아니겠나. 역사에세이는 지원자의 이념 판단이 아니라 사고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또다른 대기업 인사담당자도 “역사 인식을 살피는 것은 지원자의 방향성을 살피는 절차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는지를 보는 것일 뿐이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의 취지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유행처럼 번진 역사 평가가 오히려 ‘취업 용 역사관’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그 시간을 보내며 갖게 된 가치관, 역사관을 1000자 분량의 글과 10분의 면접으로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취업은 해야하는 것이고 일단 역사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니 일단 이에 맞춰 취업준비를 해야하는 것이 현실이겠죠.

기업 인사 담당자와 채용 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모아보면 역사를 연대 등으로 단순 암기하는 것은 시간만 버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인적성 검사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객관식 문제가 나올 수는 있지만 대다수는 사고력을 필요로하는 문제입니다.

현대차의 기출 문제를 봐도 ’역사속 인물의 발명품 중 자신이 생각하는 ‘공학도의 자질’과 연관있는 발명품을 선택한 뒤 이유를 쓰라’는 식인데, 일단 역사 속 인물의 발명품 한두개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겠지만 이를 자신의 자질과 연결시키는 데는 사고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논리’가 필요하겠죠. 한 채용업체 관계자는 “자신의 전공과 역사를 결부시켜 의미를 찾는 준비를 해놓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가 기준이 무엇이든 취업의 관문은 늘 녹록치 않은 듯 합니다. 그 관문을 2년의 백수 기간을 거쳐 힘겹게 넘어왔던 경험자로서 한 말씀 드리며 기사를 마무리할까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이루는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 원하고 바랐던 꿈의 크기와 모양과는 조금 달라질 수도, 다른 사람보다 늦을 수도 있지만 포기 하지 않으면 결국 본인이 가고자 했던 그 길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겁니다. 취업준비생일 때는 남들보다 한달, 반년, 1년 늦게 취업하는 것이 엄청난 실패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미래를 그리며 한숨 쉬고 눈물 흘리던 그 시간이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된다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이 노력한 만큼 좋은 결실을 맺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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