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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고, 달고, 시고, 짜고… 알싸한 ‘허브향’은 덤
뉴스종합| 2014-10-27 07:31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동남아시아 음식의 맛은 현지음식에 비해 하나같이 밍밍하다. 태국이나 베트남 요리는 맵고, 달고, 시고, 짠 혀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맛으로 이름나 있지만 이국의 향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우리나라에서 문을 연 대개의 동남아 음식점에서는 향신료를 덜어내기 때문.

하지만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5평 남짓한 ‘쪽방 마켓’에 들어서면 알싸한 향이 가득한 베트남 향신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늦은 오후가 되면 칠리고추, 생강, 레몬글라스과 라이스 페이퍼가 오밀조밀 담긴 택배박스가 10분 간격으로 하나씩 전국으로 배달된다. 경기도와 경남권 곳곳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실속 있는 소매점인 셈이다.

주인 한 씨(42)가 이곳에 점포를 연 이유는 한국에 사는 베트남인들에게 시큼하면서도 짠 ‘고국의 향기’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다만 그는 “10여년 전 만해도 이 근방인 장위동ㆍ종암동ㆍ월곡동 일대에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만 지금은 성동구 성수동으로 갔다”고 했다. 봉제공장 때문이란다.

보문동에 위치한 5평 남짓의 베트남 소매점. 칠리소스, 생강, 라임, 레몬글라스, 라이스 페이퍼와 인스턴트식 베트남 쌀국수를 구입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좋은 향신료는 칠리로 만든 간장소스.

한 씨의 말처럼 늦은 밤 달이 차오르면 성수동 일대 봉제공장이 들어선 길목마다 베트남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 이주민 여성들의 향기가 스친다. 화려한 오피스텔 너머에서 패션 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성수동 골목에는 동남아 음식점 하나 없지만 길목 한 켠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인 리브디 씨(27)는 “코 끝을 자극하는 내 고향의 시나몬과 라임은 (여기) 없어도 내 이웃에게서 시큼한 그 향이 난다”고 했다.

한편 혜화동로터리를 따라 25여개의 점포가 곳곳에 들어선 ‘리틀 필리핀’ 거리는 매주 일요일 마다 알싸한 레몬글라스 향과 튀김 냄새가 뒤섞인다. 혜화동 성당에서 오후 1시반 미사를 드리고 나온 필리핀인들이 이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름에 볶은 라이스와 필리핀식 잡채 ‘비혼’, 그리고 기름에 막 튀겨낸 BBQ 꼬치를 먹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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