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금속활자로 보는 조선, ‘움직이는 글자, 조선을 움직이다’ 展
라이프| 2014-10-28 08:23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금속활자 인쇄술을 통해 조선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살피는 특별기획전이 마련됐다. 호림박물관은 오는 29일부터 서울 도산대로 신사분관에서 금속활자본 특별전 ‘움직이는 글자, 조선을 움직이다’를 연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호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속활자로 인쇄한 전적(典籍)과 문방사우가 소개된다.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꼽히는 ‘직지(直指)’를 찍어낸 우리 옛 기술과 문화가 조선시대에 어떻게 꽃피웠는지를 살펴보는 전시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활자 제작뿐만 아니라 조판기술, 제지기술, 금속활자에 적합한 먹의 제작 등 인쇄에 필요한 기술이 집약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조선시대 금속활자를 이용한 국가 통치 이념의 전파와 문화 부흥의 양상을 조명한다. 


전시회에선 조선시대 금속활자로 인쇄한 전적(典籍)들을 크게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책으로 기틀을 세우다’와 ‘조선 후기의 금속활자-책으로 문화를 부흥시키다’로 나누어 선보인다. 더불어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국가의 주축인 사대부들이 책과 함께 애호했던 문방사우와 책가도 등 회화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본 중에선 건국 이후 통치 자료로 삼기 위해 ‘경자자(庚子字)’로 인쇄한 금속활자본이 있다. 주희가 편집한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과 논어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분류한 ‘근사록’(近思錄) 등이다. 세종대 때 제작된 ‘자치통감강목’은 ‘경연(經筵)’이란 인장이 찍혀 있어 세종이 20여년 동안 매일 참석했던 신하들과의 경연에 사용한 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금속활자본으로는 ‘맹자언해’(孟子諺解) ‘주서백선’(朱書百選), ‘사기영선’(史記英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정조가 직접 선정했기 때문에 책 이름 앞에 ‘어정(御定)’을 붙여 부르기도 한 왕실 간행본으로 당시 금속활자본 간행을 통해 문화 부흥을 꿈꾸었던 정조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번 전시회는 조선 왕조의 서적 보급을 통한 통치 이념의 전파와 금속활자 기술 활용에 대한 흐름과 역사를 보여준다. 조선왕조 개창의 주역이었던 정도전은 서적포(書籍鋪)를 설치하여 금속활자 인쇄를 제안했으며 1403년 태종대 때 실현됐다. 태종은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종대 때 정착됐다. 세종은 인출량과 품질을 대폭 개선한 ‘경자자(庚子字)’를 제작했다. 서체의 아름다움 덕분에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6번이나 다시 만들어진 ‘갑인자(甲寅字)’ 역시 세종대에 처음 제작됐고, 이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완성으로 꼽힌다. 또 진양대군(세조)의 서체를 바탕으로 제작한 ‘병진자(丙辰字)’는 세계 최초의 납활자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세종대 때 정착된 금속활자 기술은 세조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세조는 당대 명필가였던 강희안과 정난종의 서체를 바탕으로 각각 ‘을해자(乙亥字)’와 ‘을유자(乙酉字)’를 제작하게 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글자를 쓴 ‘정축자(丁丑字)’도 만들었다. 이후의 여러 왕들도 금속활자 제작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이로 인해 조선 전기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은 모든 분야에 걸쳐 조선에 큰 손실을 입힌 전란으로 서적의 손실 역시 막대했다. 화재에 의한 손실 못지않게 일본으로 약탈된 수도 많았으며 금속활자와 활판 등의 인쇄도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금속활자 인쇄 문화는 임진왜란 이후 한동안 중단될 수 밖에 없었으며 금속활자를 다시 복구한 것은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여 금속활자 전성기를 다시 재현했다. 이 때 제작된 활자는 갑인자 계열의 ‘무오자(戊午字)’이다. 그러나 전란 직후의 정치 ·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크게 번성하지는 못했다.

광해군 이후 숙종대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이 쓴 글자를 바탕으로 ‘원종자(元宗字)’를 제작했다. 이후 정조대에는 주자소(鑄字所)를 복원하여 ‘정유자(丁酉字)’ · ‘임인자(壬寅字)’ · ‘정리자(整理字)’ 등을 각각 수십만 개의 활자로 제작했고 규장각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출판 사업을 시행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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