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국노래자랑’으로 찍은 한국, 한국인…사진작가 변순철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우리 욕망을 담았죠”
라이프| 2014-10-31 09:50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딩동댕동댕~, 전국~, 빰 빠빰빠 빰 빠~’

느긋하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거의 모든 가정에서 습관처럼 틀어놓고, 원래 집안에 있던 가구인양 배경처럼 보고듣던 TV 프로그램인 KBS ‘전국노래자랑’. 사진작가 변순철(45)에게도 1980년, 그러니까 11살 이후 ‘세상의 모든 일요일’의 시작은 잠결에 듣던 송해의 오프닝 멘트와 프로그램의 로고송, 출연자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변순철 작가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부모님께서 ‘야, 일어나!’라고 기상을 독촉하시던 일요일 아침마다 집안에는 ‘전국노래자랑’이 틀어져 있었죠. 어렸을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말, 뉴욕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던 때였습니다.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등 다인종 커플을 찍은 저의 첫 프로젝트 ‘짝-패’가 연장 전시를 하는 등 국내외 사진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직후, ‘이제 한국, 한국 사람들을 찍어야 된다’고 마음 먹고 고민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일요일 아침이었고, TV에는 ‘전국노래자랑’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가로서 직감이 오더군요. ‘저거다!’ 엉덩이를 탁 쳤죠.”


변 작가는 KBS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을 설득해 2005년 설 특집부터 출연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전국을 따라다니며 2007년까지 3년간 1차 촬영을 했다. 그러나 마호가니로 된 대형 아날로그 카메라 디오돌프(8˝×10˝)에 담긴 출연자들의 모습은 왠지 ‘정형화’돼 있었다. 작가로서 새로운 고민을 거듭한 끝에 2012년 다시 2차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이 방영 34년을 맞은 올해까지 출연자들을 니콘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이번에는 출연자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학생, 아가씨, 선생님! 마음대로 해보세요, 리허설한다고 생각하시고!”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원더우먼 복장을 한 오산 시장의 아주머니도, 바람머리를 하고 강아지와 함께 무표정을 지은 청년도, 야구 유니폼을 입고 나온 배불뚝이 아저씨들도, 아빠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학생도, 총천연색 의상으로 한껏 멋부린 아가씨도, 한복입은아프리카의 흑인 여대생도, 각자 생의 기막힌 한 찰나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멋지고 웃기고 자랑스런 포즈를, 두번 다시 없을 절묘한 표정을 사진 한 컷에 내줬다. 변순철 작가는 ‘전국 노래자랑’의 출연자들을 찍은 사진 80점을 동명의 작품집(지콜론북)으로 최근 펴냈다. 그 중 40점을 골라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 지난 28일부터 전시중이다. 변 작가를 29일 북서울미술관에서 만났다. 


“80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십대의 미소녀까지, ‘월남치마’부터 빨주노초파남보의 총천연색 의상까지 다 있더군요. 그 분들은 뭔가를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평범한 서민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판타지’ 속에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모님이 못 다 이룬 꿈을 위해서, 누구는 일등하고 싶어서 무대에 오릅니다. 전국노래자랑에서는 남녀노소가 평등하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가식적이고 포장된 것이 아닌, 날 것의 우리 모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연자들의 모습에 우리 본연의 심리, 욕망, 그리고 사회, 문화, 역사까지 다 들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예술가가 작업할 때는 보통 개인적 자아가 사회적 자아를 밀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작업은 반대였습니다. 제 사회적 자아로 개인적 자아를 밀어내고 작업을 했습니다.”


인물 사진에 집중해온 변 작가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클로즈업’이론과 소설가 김훈의 문장을 빌어 자신의 작업과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대상 혹은 팩트 그 자체를 장식하지 않고, 우회하지 않고, 직시하고 표현하는 매체가 자신의 카메라이고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 것은 타자를 통해 자아의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다인종 커플을 찍은 첫 프로젝트 ‘짝-패’는 뉴욕 유학 시절 백인 사회에서 유색 인종으로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고, ‘전국 노래 자랑’은 출연자들의 과장된 포즈와 표정 속에서 작가 또한 자신 안에 숨어있던 욕망을 봤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은 다양하게 과장된 포즈와 의상, 표정을 통해 한국의 과거와 현재, 토속과 서구, 전통과 대중문화, 실재와 판타지, 현실과 욕망이 혼재된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주 익숙하지만 한편으로 기괴할만큼 낯선 이미지들은 결국 우리, ‘한국, 한국인의 얼굴’이다. 


변 작가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공부했으며,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서머셋 하우스, 베이징 스페이스 DA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뉴욕 국제 사진센터에서 바이어 윈로스 펠로십을 수상했다. 지난 2010년 영국 윌리엄 왕자가 자선재단크라이시스가 런던 서머셋하우스에서 주최한 사진전에서 ‘짝-패’의 작품이 큰 주목을 받았다. 


그가 차기 프로젝트로 구상 중인 것 중 하나는 서울대 융복합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로봇을 대상으로 한 작업이다. ‘타자를 통한 자아의 발견’이 ‘로봇을 통한 인간성의 탐구’로 이어지는 것. 인물 사진의 확장이기도 하다. 


suk@heraldcorp.com

사진=윤병찬 기자 yoon46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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