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미생’ 윤태호 “주인공 장그래, 사장이나 회장될 일은 없을 것”
엔터테인먼트| 2014-11-28 09:21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 작품을 재창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뛰고 있다는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운 일이죠.”

케이블 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의 인기로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는 부쩍 찾는 곳이 많아졌다. “작업을 하는 데에 방해가 될 정도”이지만 “그 덕분에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을 취재하는 데엔 용이해졌다”고 한다. ‘미생’ 작가라고 하면 누구라도 팔 벌려 환영하는 스타작가가 됐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할 당시부터 ‘샐러리맨의 교과서’라는 수사를 달고 다녔다. 이 작품으로 인해 10~20대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웹툰은 독자층이 꽤 넓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모바일 디바이스가 보편화된 시대에 등장한 ‘미생’은 출퇴근 길 휴대폰을 손에 쥔 40대 이상 남성들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미생’ 인기의 일등공신이 됐다.

꼼꼼하게 취재한 원작이 플랫폼을 옮겨 TV에서 방영되자 재밌는 현상이 생겼다. TV 수상기 앞을 떠난 젊은 2030 여성, 30대 남성들이 주시청층으로 떠오르며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방송분이 6.3%, 20대, 30대 여성시청층에선 지상파를 포함한 동시간대 1위였다. 이는 다시 원작의 인기로 이어졌다. 드라마의 열풍으로 원작의 판매 부수는 4배 이상 올랐다. 지난해 10월 총 9권으로 완간된 ‘미생’은 하루 2000세트 이상 팔려나가며 지난 26일 기준 200만부 판매를 달성했다. 드라마를 향한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미생’은 현재 중국 등 아시아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수출 계약이 성사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중국 CCTV에서 14분 분량의 소개영상이 방영됐고, 동남아시아와 미국에서의 리메이크 가능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사진제공=CJ E&M]

소위 원작의 ‘하이브리드’화 과정이 진행되며 새로운 현상들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에 선 윤태호 작가가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산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박람회 좌담회에 참석, ‘대중의 공감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미생’은 윤태호 작가가 무려 4년 7개월을 공 들인 작품으로 워낙에 인기가 높은 작품이었다.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이 제목은 사실 고심 끝에 선정됐다.

“출판사에서 처음 제안한 제목이 ‘고수’였어요. 바둑 고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눠준다는 의미였는데, 제가 ‘고수’니 하는 제목을 좋아하지 않아요. 제 스스로가 고수가 아니라 그런지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없더라고요.”

‘미생’을 권한 건 윤 작가였다. 아직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의 바둑돌을 의미하는 ‘미생마’에서 ‘말 마(馬)’ 자를 빼고 ‘미생’이라 짓게 됐다. “고졸 검정고시 학력으로 입사한 장그래가 미생인데, 그렇다고 대졸 정사원과 대표는 완생인가.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 미생으로 완생을 지향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시작 단계부터 공을 많이 들였기에 윤 작가는 “‘미생’이 다른 매체로 확산되는 것을 보며 보람과 소명의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한 작품이 단행본으로 판매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많은 작품으로 달리 생산되는 것도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드라마는 원작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영상 문법에 맞는 변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에피소드와 특정인물 중심으로 작품이 전개됐고, 상황 설명에 내레이션이 많았던 원작은 영상으로 옮겨오며 등장인물 전체의 비중이 적절히 분배된 이른바 ‘집단 주연’ 체제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윤 작가는 이 같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생’ 성공의 공을 제작진에게 돌렸다.

“김원석 PD가 저보다 더 제 작품을 탐독하고 분석했더라고요. 시나리오도 미리 받았지만 시청자로 1회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보지 않았어요. 지나친 개입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만 만화에서 오해가 생기거나 애매모호할 수도 있는 부분, 시즌2를 작업해야 하니 드라마상에서 맞지 않는 설정이 나오는지만 정리한 정도였어요. 제작진은 원작자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하느라 고생했을 겁니다.”

제작진은 하지만 윤태호 작가가 ‘미생’ 작업을 하던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가며 드라마 제작에 돌입했다. 윤 작가가 했던 것처럼 상사와 기원을 수시로 찾았고, 보조작가 두 명을 무역상사에 인턴사업으로 취업시키며 현장의 공기를 익히게 했다. 그러니 “대본이 달라지고 전문용를 쓰는 타이밍이 달라몄다”(이재문 기획PD)고 한다. 극중 캐릭터마다 감정이 살아나자 드라마는 공감과 위로의 힘이 커졌다. 지극히 평범했던 직장인들이 하루 하루를 이겨내는 모습은 드라마로 옮기기에도 적합했던 소재임을 마침내 입증한 셈이다.

윤 작가는 “각자의 욕망이 달라 ‘미생’이 나왔을 때 출판사에선 ‘실용서’로 보이기를 바랐고, ‘직장인들의 교과서’로 보이기를 의도했다. 드라마 쪽에선 ‘기존 질서를 따르지 않는 성공사례고 가고 싶은 것 같다”고 전제하며 원작자이자 1차 창작물을 생산하는 작가의 입장에서의 생각을 전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힘들지만 그것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들이 상사 욕을 하면서도 일을 잘 하려고 애쓰는 과정 역시 좋은 드라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어요. 시스템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독자(대중)의 요구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사고방식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들이 조금 더 예민해졌으면 좋겠어요. ‘미생’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에 준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가 하나의 인간, 세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거기에 걸맞는 작품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 세계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드라마 종영 이후 몇 달이 지날 내년 3월에는 ‘미생’ 시즌2도 웹툰으로 만날 수 있다. 윤 작가는 “올 가을로 예정했던 것이 내년 3월로 밀렸는데, 더 늦어질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일본의 ‘시마과장’처럼 미생이 시리즈로 간다 해도 주인공 장그래가 사장이나 회장이 될 일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