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금융권CEO 승계 프로그램이 없다
뉴스종합| 2014-12-03 11:21
프로그램 있어도 유명무실
짧은임기 리더십 유지에만 급급
관치가 승계시스템 망가뜨려



최근 금융계가 신관치금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정설이 돌던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결국 은행연합회장에 선임되는가하면 우리은행 차기은행장 선출과정에선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가 전면에 등장했다.

매번 반복되는 금융 최고경영자(CEO) 인선에서 관치논란이 일어나는 까닭은 승계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는 아예 프로그램이 없고, 있는 곳도 유명무실한 곳이 태반이다. 그래서 매번 인사때마다 깜짝인사가 등장하고 인사혼란과 지배구조 불안감이 증폭된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CEO 승계프로그램 상시화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내놓은 가운데 금융사 자발적인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없거나 유명무실=국내 금융지주사들은 과거 지배구조가 흔들린 경험을 바탕으로 승계절차는 모두 갖추고 있다. 문제는 유명무실하다는 점이다. 절차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KBㆍ신한ㆍ농협ㆍ하나금융 4대 지주사 모두 ‘지배구조 내부규정’을 마련해 승계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명목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절차나 프로그램의 구체성ㆍ연속성이 미진하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내분사태로 홍역을 치른 KB금융의 경우 회장과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상무급 이상 계열사 임원과 헤드헌팅 업체가 추천한 외부인사중에서 차기 회장을 선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의 통제 하에 어떤 절차를 통해 결정되는지는 모호하다.

KB금융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승계프로그램이 미진하다는 평가에 따라 TF팀을 구성해 방안을 찾고 있다”면서 “내년 3월전까지 관련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승계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도 금융위가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맞게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 농협금융과 최근 지주사를 합병한 우리은행은 자체 승계프로그램이 없다. 

▶‘과정’아닌 ‘이벤트’라는 인식이 문제=문제는 국내 금융사의 경우 현 CEO와 사외이사들의 재임기간이 짧아 자신의 리더십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할 수밖에 없다. 짧은 임기에 경영권 승계계획이 실행되는 경우가 드문 것도 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사회나 이사들이 경영권 승계 문제를 ‘과정’의 문제가 아닌 특정 인물을 선택하는 이벤트로 생각하는 경향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최소 10년 이상의 내부 경력을 갖춘 인물들을 중심으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CEO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바로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글로벌(GE)사의 전임 잭 웰치 회장은 취임 전 6년간 승계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받았고 현재 제프리 이멜트 회장도 회장이 되기까지 6년 5개월의 승계과정을 거치며 평가를 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권에 차기 승계자를 키운다는 개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현재 규정자체도 승계 계획을 주도하는 주체도 불명확하고 CEO는 퇴임(해임)과 승계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이해상충에 빠지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는 “장기적 시각에서 핵심 임원들의 CEO 잠재 역량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이들의 역량 개발ㆍ점검을 위해서는 순환 보직시 이사회 사전 협의를 거치는 등 보다 촘촘한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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