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인기 개그코너 속 웃음코드로 철학하기
라이프| 2014-12-12 11:18
1999년 ‘개그콘서트’에서 방영된 ‘스크림’의 에피소드 중에선 “영화 보다가 어패류 이름을 말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진행된 무대가 있었다. 개그맨 김준호가 “나랑 머리하러 가자”고 하니 심현섭이 “귀찮다”고 한다. 김준호가 재차 “그러지 말고 나랑 가자 미장원”이라고 해서 죽는 장면이 나왔다. “가자 미”때문이었다.

이는 “모든 사람은 어패류 이름을 말하면 반드시 죽는다, 김준호는 “가자, 미장원”이라고 하며 은연 중 생선 이름 “가자미”를 댔다, 그러므로 김준호는 죽는다”는 연역논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연역논증의 ‘기계적 적용’이 웃음을 유발한다. 베르그송은 “생명이 생명처럼 보이지 않고 기계처럼 보일 때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철학저술가인 김성우와 코미디 공연 기획자 송진완이 공동으로 쓴 ‘열여덟을 위한 논리 개그 캠프’의 한 대목을 요약한 내용이다. 이 책은 ‘개그콘서트’ ‘웃찾사’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 등 TV 코미디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과 일반인들에게 철학과 논리를 쉽게 전하고자 했다. 톡톡 튀는 발상과 알기 쉬운 설명이 돋보인다.

‘개콘’의 ‘스크림’을 통해 연역논증과 베르그송의 ‘기계적 경직성’이라는 웃음의 원리를 다룬 저자들은 개그맨 김준호의 ‘꺾기도’에선 귀납논증과 칸트의 ‘웃음의 불일치 이론’를 끌어낸다.

‘코미디 빅리그’의 ‘사망 토론’과 ‘개그 콘서트’의 ‘박대박’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말한 농담 기술, 즉 전치(前置, 자리바꿈)의 원리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를 설명한다.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는 ‘마요네즈 소스의 연어 요리’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어느 몰락한 남자가 부자 친척에게 자신의 딱한 처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호소해 돈을 빌린 뒤 고급 식당에서 연어 요리를 먹는다. 그 장면을 발각한 친척이 비난하자, “돈이 없을 땐 연어 요리를 ‘먹을 수 없고’, 돈이 있을 때는 연어 요리를 ‘먹어선 안 되다니’, 그렇다면 도대체 난 언제 연어 요리를 ‘먹어야’ 하냐?”고 되묻는다.

‘개콘’의 ‘박대박’ 에피소드 중에선 유명한 야구선수로 분한 박영진이 기자역의 박성광으로부터 어떤 선수를 보고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느냐는 질문을 받고 데이비드 베컴이라고 답하는데, “그럼 축구선수가 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박영진이 “그럼 여자 좋아하면 여자 되냐, 난 여자 좋아하는데 왜 여자가 안 됐냐”며 타박한다. 둘 모두 허수아비논증의 오류(상대의 논리를 왜곡해 반박하는 오류)를 이용한 농담이다.

저자들은 1, 2부에서 개그에 흐르는 논리를 논증과 오류의 일반 기술 및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으로 설명하고, 3부 ‘웃음에 관한 짧은 철학사’에서는 웃음을 연구한 주요 철학자들의 생각을 개괄했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