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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뮤지컬로 되살린 민복기 대표
라이프| 2014-12-26 07:38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는 지글지글한 내 현재를 대변해주는 것 같죠. 힘들고 지친 청춘에 위로가 되는 노래예요”

최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복기 극단 차이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인디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는 오는 1월 20일부터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선보인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 스끼다시 내 인생”(스끼다시 내 인생 中) 등 직설적인 가사와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생활고를 겪던 그는 지난 2010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제공=극단 차이무]

“우연히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들을 들었는데 구구절절했어요. 노래 하나하나마다 하나의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를 갖고 있어요. 노래가 묘해요. 늘 유명한 사람만 기억되는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처럼 잊혀져 가는 사람의 이야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민 대표가 극본과 연출을 맡은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인생과 노래를 소개하는 DJ캐준, 달빛요정, 전화 상담원 은주, 자살을 시도하는 소녀 4명만 등장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천과장으로 출연해 주가가 높아진 박해준과 올해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연극 ‘유도소년’으로 대세 배우가 된 박훈, 뮤지컬 ‘그날들’ 등에 출연한 김소진, 신예 김소정이 출연한다.

“관악FM에서 소개됐던 실제 사연들을 극 속에 담았고, 이번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의 사연을 받아 좋은 내용이 있으면 공연 때 읽어볼 생각이예요. 박훈 배우는 ‘내가 아는 뮤지컬의 ABC를 모두 거스르는 뮤지컬’이라고 하더군요. 기존 뮤지컬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노래가 있는 드라마가 될 거예요”

극단 차이무는 배우 송강호, 문성근, 명계남, 유오성, 강신일, 이성민, 박원상, 이희준 등 쟁쟁한 배우들을 배출해낸 극단이다. 차이무는 ‘차원이동무대선’의 준말으로 “관객을 태우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해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민 대표는 차이무 단원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자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했다. 극단과 자신 모두 차이무 단원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극단은 아니라고 하는데 자신은 단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극단은 차이무 단원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 아무도 모르는데 자기만 차이무 단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명확한 것은 민 대표가 차이무의 ‘대표단원’이라는 것이다. 1995년 차이무를 창단한 이상우 연출은 차이무 홈페이지에 ‘배후’(스태프)로 소개돼있다. 민 대표는 대학 연극제에 참가했다가 심사위원이었던 이상우 연출을 처음 만났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는데 연극반 활동을 하느라 학점이 안좋았어요. 어디 딴 데갈 지경이 안 되니 이상우 선생님께서 같이 연극해보자고 제안하신 것을 받아들였죠. 1996년에 차이무에 입단했을 땐 이 일 저일 다하는 잡역이었어요. 그러다 연극 ‘비언소’ 때 고(故) 박광정 선배 밑에서 조연출로 일했어요”

[사진제공=극단 차이무]

‘조통면옥’ 등 차이무에서 올린 연극들에 간간이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던 민 대표는 드라마 ‘로드 넘버 원’, 영화 ‘화이’ 등에도 조연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오상식(이성민 분)을 찾아가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김선배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가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것도 아니고 어디에다 프로필을 제출한 것도 아니예요. 배우가 많은 역할을 맡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잊을만하면 누군가 찾아와서 같이 일해보자고 해주는 지금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배우들이나 연출들은 오랫동안 무엇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빨리 유명해지려고 해요. 그래서 더 다치는 것이 아닐까요. 어차피 평생 걸어갈 길인데….”

극단 차이무가 새로운 단원을 받아들이는 방식 역시 황소걸음이다.

“알음알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한동안 지켜봐요. 아주 오랫동안 보기만 하죠. 다른 단원들이 싫어하면 본인이 못 버텨서 나가는 거죠”

하지만 민 대표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온 단원들에게 헌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저희 극단이 일년에 공연하는 작품은 뻔한데 ‘차이무에서만 일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은 스케줄이 많으니까 ‘한번 출연할래’라고 물어봤다 ‘어렵겠다’고 하면 ‘그래’하고 말죠. ‘그래도 한번 출연해야지. 너 벌써 잊은거야’ 하는 것도 별로인 것 같아요”

배우 김소진은 한 인터뷰에서 처음 차이무에서 연습할 때 선배들로부터 “좀 놀아”, “막 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둑둘 때 훈수두는 사람이 실제 바둑두는 사람보다 넓게 보니까 수가 낮아도 좋은 코치를 해주잖아요. 좁게 보지 말고 슬슬 놀 때 수가 넓게 보이는 거죠. 연극이 영어로 플레이(Play)잖아요. 놀이에서 시작됐는데 나중에 법칙들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법칙만 따라가려고 하면 애초의 놀이 정신을 놓치는 것이 아닐까요”

내년으로 20주년을 맞는 차이무의 계획에 대해서도 민 대표는 “20주년을 빌미로 좀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을까”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꼭 뭘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우리 극단은 계속 연극을 하고 있는데 20주년에는 특별하게 하고 21주년은 대충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상우 선생님께서 오랜만에 작품을 쓰고 계시고, 저도 광화문 네거리의 뇌성마비 시인 이야기 등 몇 개 써놓은 작품이 있어요. 천천히 하나씩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민 대표의 꿈은 더 나이가 들면 교외에 극장을 하나 짓고 동료들과 노령극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가족 관객들이 차를 몰고 와서 연극도 보고 연극교실도 하고, 배우들이랑 삼겹살도 구워먹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배우들은 관객들이 그리워하는 ‘그때 그 작품’을 보여드리는 거죠. 그전까지 서로 싸우지 말아야죠. 뿔뿔이 헤어지면 모노드라마를 해야하니까요. 하하”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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