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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총재 “어느 한 국가의 금융위험 예상외로 확산할 수도…웬지 불안함을”
뉴스종합| 2015-01-05 15:33
[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새해 벽두부터 “어느 한 국가의 금융위험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주요국 통화정책 방향의 엇갈림이 분명해지면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더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낮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신년사를 통해 “2013년 한 연설에서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장기침체, 소위 세큘러 스태그네이션(secular stagnation)이라는 이슈를 제기했을 때 여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총재는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전문가들이 세계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새로운 일상,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것도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환경, 다시 말해 저성장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새해 주요국의 상이한 통화정책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비금융기업의 금융업 진출 등을 지목하면서 “금융 부문에서도 전례없는 변화가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제결제은행(BIS)은 세계적으로 금융부문의 위험추구 성향이 과도함을 지적한 바 있다”면서 “어느 한 국가의 금융위험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확산될 수 있으므로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은 정책금리를 올리는 출구전략을 본격화하고 유로나 일본은 당분간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가면서 최소한 해외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성 지적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바젤Ⅲ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규제 강화에 대응한 금융사의 준비에도 미비점이 없는지 세심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금융 소비자와 공급자의 직거래 등을 거론하면서 “비금융기업의 금융업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서 “금융의 본질로 인식돼온 중개기능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작금의 상황이 어찌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큰 흐름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총재는 신년사로 덕담보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진 데 대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에 대해서도 체감경기 부진, 세월호 참사, 금융사 지배구조 논란, 개인정보 유출사건 등을 사례로 들면서 “국민 모두에게 시련의 한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쁨과 보람에 가득 찬 미래가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며 “그러나 마냥 희망만 품기에는 왠지 불안함을 떨칠 수 없는 게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hanimomo@heraldcorp.com


<다음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전문이다>

금융인 여러분! 을미년 새해를 맞아 여러분과 여러분 가족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는 우리 금융인들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시련의 한 해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회복 속도가 미약하여 우리나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부문간 성장격차가 확대되어 일반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도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그로 인해 국내경기 흐름도 적지 않게 달라졌습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과 연이어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금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했으니 이런 어려움들을 뒤로 하고 기쁨과 보람에 가득 찬 미래가 펼쳐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냥 희망만 품기에는 왠지 불안함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패러다임이 급격히 뒤바뀌는 지각변동기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지도 모릅니다.

2013년 한 연설에서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장기침체, 소위 세큘러 스태그네이션(secular stagnation)이라는 이슈를 제기했을 때 여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전문가들이 세계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상,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것도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환경, 다시 말해 저성장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문에서도 전례 없는 변화가 예상됩니다. 금년에는 주요국 통화정책방향의 엇갈림이 분명해지면서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모임인 BIS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부문의 위험추구 성향이 과도함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국가간 상호연계성이 크게 증대된 상황에서 어느 한 국가의 금융위험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확산될 수 있으므로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바젤Ⅲ로 대표되는 글로벌 금융규제기준은 대다수 금융기관들의 영업전략과 수익상황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대응준비는 양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보완할 점은 없는지 세심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비금융기업들의 금융업 진출도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인터넷과 SNS를 기반으로 금융의 소비자와 공급자가 직접 거래하는 ‘탈중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금융의 요체요 본질로 인식되어 온 ‘중개기능’의 효용성이 점점 떨어지는 작금의 상황이 어찌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큰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진화하는 디지털시대에 슬기롭게 적응하지 못해 중앙무대에서 밀려난 노키아의 사례를 되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낮아진 금융신뢰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것도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모든 금융인들이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계시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도덕성과 책임성을 끌어올리겠다는 마음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융인 여러분! 새해 첫 만남에서는 덕담을 드리는 것이 도리이겠습니다만 오늘 그러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희망을 손에 잡히는 현실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자는 뜻에서 드린 말씀임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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