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익어가는 구수한 ‘시래기 사랑’
헤럴드경제| 2015-01-16 11:34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의 최전방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본‘ 펀치볼’은 해발 1000m이상의 8개 봉우리로 둘러쌓여 있는 분지로 내려다보면 면 전체가 눈 밑에 있어 한 마을 같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최대의 격전지로 대한민국 국군이 죽음으로 이곳을 사수했고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국의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노을진 분지가 칵테일 잔 속의 술 빛 같고 모습이 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재미있게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최전방이지만 농민의 뜨거운 땀방울이 넘친다. 바로‘ DMZ펀치볼 시래기’ 출하작업의 열기 때문이다.

‘Make hay while the sun shines.(해가 빛날 때 건초를 말려라)’라는 속담은 기회를 잘 살리라는 의미이다. 움츠러들기 쉬운 겨울, 비타민C를 농축한 시래기는 오래 전부터 우리 몸의 기(氣)의 상징이자, 건강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미지근한 물에 반나절 정도 푹 불렸다가 말랑말랑할 때 데쳐서 깨끗하게 헹군 다음, 껍질을 벗기고 들기름과 집에서 담근 간장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간을 한다. 평상시 보다 조금 적은 밥물을 잡고 무쳐놓은 시래기를 쌀 위에 넉넉히 얹는다. 밥이 되는 동안 비벼 먹을 양념장을 준비하면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는 저렴하고 구수한 한 끼가 된다.

된장국, 추어탕, 칼국수, 붕어찜, 고등어 요리, 뼈다귀 해장국 등 어느 요리든 단골로 등장하는 시래기는 필수 식재료다. 칼슘과 철분이 많아 골다공증이나 빈혈에 도움이 된다. 또 섬유질이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느니 하면서 건강식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요즘 웰빙바람을 타고 시래기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점차 늘어가고 급기야는 특산물로 대량 생산하는 지역도 생겼다. 펀치볼로 불리는 해안면131개 농가(면적 160㏊)에서 지난해 320t 가량을 수확해 연간 30억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다.

8월 중순에 무 파종을 시작해 50여일간의 생육을 통해 10월 중순에서 11월까지 수확을 해 1~2개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건조하여 상품으로 판매가 한창이다.


이 곳에서 시래기 덕장을 운영하는 김원배(60) 씨는“ 비수기인 겨울 한철 농가당 3000만원의 고소득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무, 배추 등이 자라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만들어 먹는 시래기.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겨울철 전통 레시피의 꽃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농축된 시래기의 영양소는 우리에게 어떤 보양식 못지않은 건강을 선사할 것 같다.

오늘 저녁엔 청정자연 속에 농축된 시래기의 에너지로 몸을 추스르는 기회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면 정성스럽게 시래기를 만든 농민들의 인정을 만나보자.

사진ㆍ글=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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