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취재X파일] 가수들의 인터뷰 기사는 많은데 내용이 붕어빵인 이유는?
엔터테인먼트| 2015-01-25 19:13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앨범 발매를 기다렸던 가수의 인터뷰가 어느 한 날 일제히 온라인상으로 쏟아지는 일들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팬들 입장에선 여러 매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인터뷰를 다뤄주니 행복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터넷으로 쏟아진 인터뷰들의 내용이 모두 천편일률적이고 성의가 없어서 놀랍지 않던가요? 또 어떤 기사들의 제목은 인터뷰 내용과 무관하게 자극적이어서 낚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던가요?

이유를 꼽자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대부분의 기획사들이 가수를 홍보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음악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많은 인터뷰들이 기자를 여럿 모아 놓고 진행하는 이른바 ‘라운드 인터뷰’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대중음악 담당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보도자료들을 받습니다. 하루라도 메일을 정리하지 않으면 메일계정이 꽉 차 다른 메일을 받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평균적인 이메일 사용자가 하루에 받는 스팸메일의 몇십배 수준의 보도자료가 메일계정으로 매일 달려듭니다.

기자나 홍보 담당자가 아니라면 보도자료는 생소한 단어일겁니다. 보도자료는 언론사에 보도를 요청하기 위해 작성하는 자료 및 문서를 의미합니다. 기획사들은 소속사 가수들이 새 앨범을 발표하거나 공연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뿌립니다. 취재원을 직접 취재해 기사를 쓰는 것이 기자의 일이지만 마감에 쫓기다보니 보도자료는 기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죠. 기자들은 보도자료를 기사체 문장으로 정리해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기도 하고, 보도자료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은 따로 기획사를 취재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같은 보도자료에는 온갖 낯 뜨거운 수식어로 점철된 문장들만 담겨 있지, 정작 음악은 없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홍보하는 경우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먼저 기자들에게 영화를 공개합니다. 영화 기사를 쓰려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영화 홍보와 비교하자면 가요계에선 시사회도 없이 홍보가 이뤄지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신곡을 들어보지도 못한 기자들이 쓸 수 있는 기사는 보도자료에 담긴 내용뿐이죠. 그 내용조차도 쓸데 없는 수식어들을 걷어내고 알맹이가 없어 기사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아! 음원 대신 첨부된 파일이 있긴 합니다. 에스라인이나 11자 복근을 강조한 섹시 화보들 말이죠. 이쯤되면 신곡을 홍보하려는 것인지, 몸을 홍보하려는 것이 구별이 안 됩니다. 인디 레이블들이 홍보를 위한 보도자료를 보낼 때 음원을 첨부해 보내는 것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메이저라는 곳에선 횡행하죠.

사실 이 같은 사태의 책임은 언론에게도 큽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수를 차지하는 기자는 연예 담당 기자들이고 절대 다수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합니다. 인터넷 트래픽이 먹거리로 직결되는 상황인데 매체 수가 너무 많다보니 기사로 관심을 받기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 트래픽을 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선택은 낚시 제목과 어뷰징이죠. 그 아비규환 속에서 음악에 진지한 관심과 내용을 담은 기사는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따라서 매일 마감에 내몰리는 기자들은 품이 많이 들면서도 회사입장에선 효율적이지 못한 기사를 쓰는 일을 피하게 되죠. 그렇게 온라인에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말았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라운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는 기사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기사에 속합니다. 사전에 인터뷰이와 그 인터뷰이의 작품에 대해 잘 파악하고 질문지를 준비하지 않으면 진행조차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기획사들은 일정 소화를 이유로 ‘라운드 인터뷰’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기획사들도 나름대로의 고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정상 수많은 매체를 돌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고, 또 특정 매체만 선택해 인터뷰를 진행하면 인터뷰를 잡지 못한 매체가 악의적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도 다반사니까요. 이런 기자들은 펜을 든 깡패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뒷전인 현재의 홍보 방식이 잘 됐다고 말할 순 없겠죠.

‘라운드 인터뷰’에선 적게는 3~4명에서 많게는 20명에 가까운 기자들이 신보를 발표한 가수를 둘러싸고 질문하고 답변을 받습니다. 그런데 신곡을 듣지도 못하고 인터뷰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무슨 할 질문이 있겠습니까? 가십과 농담 따먹기 밖에 없습니다.

기자는 인터뷰 전에 꼭 먼저 신곡을 들어볼 수 있게 기획사에 음원을 요구하는데, 이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기획사들이 많습니다.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데 이상하게 바라보다니. 신곡을 홍보하면서 신곡을 들어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인데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찐빵을 구입했는데 속이 빈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인데 말이죠. 그리고 ‘라운드 인터뷰’에선 질문이 한 자리에서 모두 공유되다보니 참석한 기자들 상당수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인터뷰에 참석해 성의 없이 다른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만 받아 적고 돌아갑니다. 질문을 준비한 기자입장에선 힘 빠지는 일이죠. 이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인터뷰들의 내용이 똑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기자들이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질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 가수가 당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작 가수들은 음악에 대해 많은 걸 물어봐주길 바라는데 안타까운 일이죠.

암울하게도 현재로서는 개선 방안이 요원합니다. 우선 연예 매체들이 앞장서서 트래픽을 양보하며 기사의 질을 높이는 데 신경을 쓸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획사들 역시 수많은 매체들이 난립한 상황이다 보니 굳이 기사의 질로 매체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무책임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결국 공은 여러분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언론사의 낚시와 어뷰징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질타하면 언론사들은 독자의 눈치를 볼 것이고, 언론사들이 양질의 기사를 위해 노력하면 기획사들도 그 같은 움직임에 뒤따르겠죠. 그런 선순환이 되는 날이 올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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