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희망 고문‘ 착취 논란
뉴스종합| 2015-01-29 12:02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근로는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자, 세대와 세대를 이어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경제적 토대이다. 이 때문에 후손에게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선대와 현세의 당연한 책무로 여겨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교육을 통해 훌륭한 성인으로 키워내고 일을 하도록 함으로써 공동체의 과업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은 앞세대와 뒷세대가 바톤을 이어가는 사회유지의 기본틀이다.

근로가 사회적 부(富)와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원천이므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사회 운영의 주체이다. 신분사회가 아닌 이상, 일의 성격, 숙련도, 연공, 직책과 직위, 성과 등에 의하지 않고서는 일하는 사람의 신분 상 격차는 있어서는 안된다.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국가 설계자는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노동구조로 신축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지속가능성과 현실적 이익 사이= 기업의 노동생산성 제고를 통한 이윤 보장이 먼저일까. 후손들에게 적재적소,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 지속가능한 국부 창출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이 우선일까. 둘 다 담보해야 함은 시장경제체제의 당연한 책무인데, 모두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도외시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폭탄’을 넘기는 세대 이기주의”라는 지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후자를 더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실업자 양산, 근로조건의 차별로 인한 일탈ㆍ갈등 요인의 증가가 결국 사회적 총비용의 증가 및 불안감을 증대시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분야 사회주도층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아담스미스도, 다보스 포럼도 사회갈등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과 약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자본주의 체제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적시한 바 있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우려스럽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청년 일자리의 부재’, ‘청년 일자리 품질의 평균적 저하’, ‘치열한 경쟁 구조의 조장과 인간성ㆍ배려심 상실’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취업유발계수 급락 불 보듯= 청년 일자리 관련 NGO, 청년유니온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10억원당 국내 취업유발계수는 1990년 72.2명이었다가 2012년 13.2명으로 급감했다. 20여년 만에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6분의1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수많은 원인 중에서 ‘기술 혁신이 고용을 줄였다’고 얘기하는 것은 200년전 초기 산업사회 기업인들의 변명과 비슷하다. 증기기관과 공업기술의 발달이 불러온 산업혁명 이후 여성, 소년 근로자로도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중견 근로자들의 해고가 잇따르자, 해고된 중견 남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기계파괴운동’이 일어났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정부와 기업인들은 여성 청소년 착취 논란을 반성하면서 이들을 보호하고 중견 남성노동자들의 채용을 늘리고 청소년과 부녀자들 상당수를 가정으로 돌려보낸뒤 가장인 이들 중견 남성노동자에게 가족 전체가 먹고 살 만큼의 ‘가족 임금’을 부여하는 대책을 실행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봉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체질 개선형 일자리 대책 부족= 취업유발계수가 줄었다는 얘기는 기업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기술혁신에 따른 설비의 생산성이 높아져 사람을 그리 많이 신규 채용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의미이고, 구직자 입장에서 보면 산업환경과 지도가 변화된데 따라 정치 경제 사회주도층들이 그에 걸 맞게 근로시스템를 바꾸지 않았다는 뜻으로 양면적 해석이 가능하다.

◆ 사진 출처=123RF(Candles in barbed wire, symbol of civil rights and hope)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조짐이 감지될 때 정부는 기업과 구직자 간 조정자로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새로운 영역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능동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그간 정부 나름의 노력이 있었던 것은 알지만, 노동시간의 유연성 등을 통한 구조적 변화에 손을 대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영역이나 공공 사업 즉, 해외 인프라 개척 및 마케팅, 기초생활 현장의 공공서비스 확충, 질적으로 향상된 라이프스타일 서비스의 확대,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 등 문화향유 증진 사업 확대, 축적된 부와 달라진 국격에 따른 글로벌 공익 사업 등으로 새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노력도 좀 더 강도높게 진행됐어야 했다.

▶“많아지는 ’불량 일자리‘는 청년 후손들의 몫”= 청년 일자리 품질도 큰 문제이다. ‘알바’형, 연습생인지 근로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인턴’형 등 저임금 일자리의 증가, 중소기업-대기업 근로자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ㆍ처우 격차의 확대 역시 적지 않은 사회적 불안요인을 낳고 있다.

청년유니온이 공개한 2014년 1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5명 중 1명(21.2%)이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2013년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첫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던 청년(만 15~29세)은 82만 9000명으로, 전년(80만 2000명) 대비 3.4%, 2008년(50만 5000명) 대비 무려 64.2% 증가하였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CXO연구소가 지난해 12월 ‘국내 1500대 상장기업 대상 직원 평균 연간 보수’를 분석한 결과, 매출 1조원 이상 대기업 직원 보수를 100으로 볼때, 1000억원 미만 중소기업은 61.4 수준의 보수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도 상장기업이니까 이정도라도 받지, 비상장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영세중기 종사자-비정규직은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절반도 안돼=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11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30만7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만3000원(3.9%) 높아진데 비해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140만3000원으로 1만7000원(1.2%) 줄었다. 정규직이 100원을 받으면 비정규직은 42.4원을 받는 것이다.

비록 노동의 양과 질, 맡은 분야 등을 차이가 날지 몰라도 사회적 부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비슷한데도 반토막 이하의 월급을 받는 영세 중소기업 종사자나 비정규직은 가계 유지에 필요한 기본 구색을 꾸리는 것 조차 버거운 현실이다.

특히 행여 정규직으로 채용해줄까 기대하면서 ‘희망 고문’을 감내하는 ‘인턴’형 비정규직의 경우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비정규직 중 비정규직 인턴의 현실= 2013년 2월, 청년유니온이 5대 주요 미용실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전국 총 198곳의 미용실 매장의 미용실 스태프 근로조건 및 임금 조사결과,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교육생이라는 명분으로 평균 시급 2971원, 즉 당시 최저임금인 4860원의 60% 정도에 불과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일주일 평균 64.9시간을 일하고 월급으로 평균 93만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학의 호텔ㆍ관광ㆍ조리ㆍ외식ㆍ식품 관련 학과와 연계하여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81개 업체에 대한 청년유니온의 조사 결과, 실습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59개 업체들이 주40시간을 근무하는 현장실습생들에게 지급하는 실습비는 월 평균 35만1993원에 불과했다. 월 실습비가 50만원에 미달하는 비율은 전체의 81.36%에 달했다. 실습생들의 평균 시급은 1684원으로 2012년 최저임금 4580원 대비 36.77%에 불과했다.

산학협동차원에서 교육컨설팅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했던 23세 학생 근로자는 “거의 직원처럼 일한 곳이 많았다. 사실상 교육을 받는 건 없었다. ‘실습이지 노동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최저임금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식비도 안줬다”고 증언했다.

호텔 조리 현장실습을 했던 23세 여성은 “(산학협동 실습이라지만) 라운지 비워진 음료 채워주기, 그릇 닦기, 뷔페 그릇 치우기, 손님의 간단한 문의사항 답해주기, 식기관리, 기물관리 등을 했다. 호텔 매니저는 ‘어차피 너희들 음식 만드는 거 못 배우니까 기대하지 말고 그냥 (허드렛) 일이나 열심히 하다 가라’고 말해 기가 막혔다”고 토로했다.

▶‘희망고문’속 잇따르는 청년의 희생=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우려고, 행여 이 회사에서 채용해주지나 않을까 기대하면서 ‘희망고문’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도 잇따르고 있다.

2011년 12월 17일, 광주 기아차 공장에서 현장실습 명목으로 근무를 시작한지 4달이 된 특성화고 고3 학생 김군이 퇴근 후 뇌출혈로 쓰러졌다. 근로기준법상 미성년자의 최대 근무 시간은 주당 46시간이지만, 김군은 주말 특근, 2교대 야간 근무까지 투입되는 등 주당 최대 58시간까지 일했다는 것이다.

2012년 울산신항만 작업선 전복 사고, 2014년 CJ공장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실습생의 자살, 같은 해 현대차 하청업체인 금영ETS에서 폭설에 의한 공장 지붕 붕괴로 야간근무 중이던 고3 학생의 압사 등이 발생했다.

▶“양질의 청년일자리로 사회시스템 유지를….”= 청년유니온 관계자는 “청년들에게 적절한 직업역량과 경력형성의 기회를 제공해 노동시장으로의 안착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중요한 과제”라면서 “청년이 노동시장에 원활하게 진입하여 괜찮은 일자리를 얻고 적절한 소득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물질적 기초”라고 강조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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