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문재인의 네 가지 인지부조화
뉴스종합| 2015-02-09 11:29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의 첫 언행은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이라는 취임 일성과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언급한 이승만ㆍ박정희 묘소 참배이다. 두 언사는 충돌하는 면이 없지 않다. 정치인들이 좋아하는 용어인 ‘구도’에 따라 도식적으로 말하면, 박정희 정권을 계승한 박근혜가 설계한 정부인데, 아버지는 인정하고 딸은 배척하는 일이 가능할까. 심리학자들이 ‘인지부조화’ 상황이라고 언급할 만 하겠다.

낙승을 기대했다가 45.3대 41.8이라는 예상 밖 박빙 승부로 신승(辛勝)한 문재인에게 봉착한 인지부조화는 이것 만이 전부가 아니다. 당내 통합 화합을 도모하겠다는 문 대표의 의지와 당이 분열될 것 같은 현실적 이탈 징후 간의 간극은 대표 경선 이후에도 여전하다.

또, 대선 국면을 2년여 앞둔 상황에서 투명하고 공평한 대권 후보 경쟁이라는 명분과 대권후보가 당권을 장악한데 따른 공정성 시비 가능성 역시 화해하기 쉽지 않은 ‘시스템 부조화’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당선된 문재인대표최고위원이 9일 동작동국립묘지내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참배를 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아울러 혁신,화합이라는 내 몸 추스르기에 진력할지, 아니면 여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 정책정당의 면모를 보이면서 대외적으로 수권능력을 보여주는 쪽에 방점을 둘 지 역시, 문 대표가 좌고우면하지 않을 수 없는 두 개의 가치이다.

인지 부조화 상황을 넘는 해법은 만만찮아 보인다. 정면충돌하는 2~3개 가치 중에서 어느 하나에 주안점을 둔다면, 부족한 나머지 가치에 대해, 인지부조화 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자기 합리화’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포도를 따려다 실패한 여우가 ‘신(辛) 포도라 별로다’라면서 좌절할 뻔한 자신을 다독였듯이 말이다.

다소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자기 합리화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부에서 웬만해선 군소리 안 나오게 중앙집권적 시스템을 확립하든가, 아니면 한쪽에 진력하느라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에 대해 당내 반대세력을 집요하게 설득하든가 하는 것이다. 전자는 ‘제왕적 당 운영’이라는 새로운 소음을 양산할 수 있고, 후자는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는 단점을 각각 갖는다.

문 대표는 숱한 난제들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마음 조차, 당 내부적으로는 겸손, 대외적으로는 강공 이라는 두 갈래로 갈라질지도 모른다.

당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인사들이 새정연의 2.8 전당대회때 내놓은 얘기들은 제각각이지만 수용할 의지가 없을 경우 당장 ‘이탈’ 가능성과 직결되므로, 문 대표가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1순위덕목이 될 것 같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대표가 9일 동작동국립묘지내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박빙 승부 끝에 석패한 박지원 의원은 새정연이 5대 세력으로 뭉쳤음을 강조하면서 당내의 모든 세력과 소중한 자산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거당적인 당 운영 체제’를 주창한 바 있다. 비롯 패배로 그 뜻이 좌절될 위기에 놓였지만 문 대표가 새겨야 할 부분이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는 문재인의 대표 당선으로 물 건너 갔지만, 내용면에서 그에 갈음하는 파격적 조치가 없는 한, 당권 대권을 한꺼번에 움켜쥔 현재 시스템은 2017년 대권 경선과정까지 문 대표를 괴롭힐 수 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야당 수뇌 중에서 가장 일을 잘 해서 반전과 수권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의 ‘합리주의’와 혁신 주문 역시 문 대표가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여당과 원만하게 일을 풀어갔던 태도는 당장 문재인 대표의 ‘전면전’ 주장과 배치된다. 새누리당은 문대표 당선 직후 축하 인사치레 만큼 ‘전면전’ 표현에 대한 불쾌감을 공식 전달했다.

문희상 전 위원장은 2.8 전당대회에서 단결과 혁신을 당부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정쟁을 지양하고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하고, 민생정치, 생활정치, 현장정치, 정책정당, 대안정당, 수권정당을 구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당부는 문재인이 준비해뒀던 호미, 삽, 펜, 총, 칼 등 중에서 무기의 사용을 억제시킨다.

386운동권의 퇴보를 다시 한 번 입증하며 패퇴한 이인영 후보의 주문은 ‘콘텐츠 전략’면에서 눈에 띈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대표가 야당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절처럼 이대로 가다가는 이나마 야당의 자리마저 유승민 원내대표 같은 새누리당 지도부에 뺏길 처지이다. 국민은 우리당이 아닌 새누리당에게서 더 분명한 혁신의 메시지를 읽고 있다”면서 새정연의 ‘지독한 변화’를 요구했다. 세대 교체를 포함해 외형적으로 뭔가 확 바꾸고, 각종 이슈에도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도록 공부와 취재를 많이 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문 대표가 당내 핵심인사들의 의견을 소홀히 할 경우 분열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최우선 과제는 빠져 나가려는 사람들에 대한 삼고초려를 비롯해 당내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리는 일이 될 것 같다.

이어 당내 기구 조직 등 시스템 정비와 체질 개선, 수권 능력을 높이기 위한 콘텐츠 업그레이드에 진력하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이 경우 대여 공세가 주춤해질수도 있는데, 이 역시 당내 공세를 당할 빌미가 되므로 문 대표가 호미와 총을 어떻게 다루면서 인지 부조화 극복의 좁디 좁은 길을 걸어갈지 주목된다.

9일 현충원에서 언급한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꾼다”는 약속도 칼을 쓸 때 늘 부담이 될 수 있겠다.

/abc@heraldcorp.comㆍ사진 정희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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